▲홍성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Photo : ) ▲홍성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연방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제45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교회의 정치참여를 금지하는 '존슨 수정헌법(Johnson Amendment)' 폐기를 추진하여 목회자들이 자유롭게 정치적 발언을 하도록 허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신앙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건넌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 미국. 그러나 이 '언덕 위에 세운 국가'의 수정헌법(Amendment)은 왜 그 첫 조항부터 '정교분리(政教分離)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을까?

홍성사 주최 종교개혁 500주년 역사특강 '홍성강좌 2017' 봄학기 강좌 '서양 근대교회사: 혁명의 시대와 그리스도교(18-19세기)' 네 번째 시간에서 윤영휘 박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는 이에 대해 설명했다.

'혁명 Ⅰ: 미국 독립혁명과 정교분리 사회'를 주제로 미국 건국 과정에 대해 강연한 윤 박사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13개 주로 이뤄진 미 연방은 그리스도교가 국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과 함께, 그들을 통치하려 했던 영국처럼 국교제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 두 가지 입장이 분명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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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독립선언 기록화.

 

애초에 미 연방정부는 각 주마다 주류 종교가 달라 전체를 아우르는 교파가 없었기에, 하나의 국교를 세우기 힘든 상황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메릴랜드 주는 가톨릭 교도들이 주로 이주한 곳이었고, 펜실베이니아 주는 퀘이커 교도들이 건설했다. 최초 정착지인 버지니아를 비롯해 뉴욕과 캐롤라이나, 조지아 주 등은 국교회(영국 성공회)가 주의 공식 종교였고, 메사추세츠와 코네티컷, 뉴햄프셔 등 뉴잉글랜드 지역은 청교도(퓨리턴) 회중교회가 국교 역할을 했다.

독립 후 새로운 국가에서 종교의 위치는 3가지 중 하나로 모아져야 했다. 첫째는 영국처럼 한 교파가 정부의 지원을 독점하는 '독점적 국교제'인데, 이는 "미국의 어떠한 관직 또는 위임에 의한 공직에도 그 자격 요건으로서 종교상의 자격은 요구되지 아니한다(No religious Test shall ever be required as a Qualification to any Office or public Trust under the United States)"는 내용으로 공적 영역에서 종교의 영향력을 제거한 헌법 4조를 통해 이미 금지됐다.

남은 것은 모든 프로테스탄트 교파로 지원을 확대한다는 '일반적 국교제'와 종교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정부 지원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국교제 폐지' 두 가지였다. 여기서 조지 워싱턴의 출생지이자 최초의 주로서 미국의 '어머니 주' 같은 버지니아 주의 결정이 중요했다. 기존 국교회나 회중교회를 배경으로 한 정치인들은 '일반적 국교제'를, 다른 교파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들은 '국교제 폐지'를 각각 주장했다.

그는 "버지니아에서 교세가 약했던 침례교도들은 '일반적 국교제'가 실시될 경우 국교회나 회중교회가 주류로서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어 현 종교적 지형이 유지된다고 봤다"며 "그래서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하는 토머스 제퍼슨과 제임스 매디슨 같은 '공화주의자들'과 결탁해 국교제 폐지를 강력히 주장, 1786년 제퍼슨의 '종교 자유법(Bill for Establishing Religious Freedom)'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제퍼슨은 "진리는 너무나 위대해서 홀로 내버려두어도 승리한다", 일반적 국교제를 주장한 패트릭 헨리는 "그리스도교 전파가 사회 전체를 이롭게 한다"는 말로 각자의 주장을 펼쳤다. 버지니아에 이어 연방정부에서 정교분리 관련 '제2 라운드'가 펼쳐졌지만, 격렬한 논쟁 끝에 버지니아와 같은 결론이 내려졌다. 이를 통해 나온 것이 수정헌법 1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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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제퍼슨.

 

윤영휘 박사는 "수정헌법은 연방정부의 권력을 제한해 시민들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제정이 시도됐던 것"이라며 "이를 통해 연방정부가 각 주의 의사에 반해 전국적 차원의 국교를 정하지 못하게 됐다"고 그 의의를 설명했다.

윤 박사는 "수정헌법 1조의 교회사적 의의는 참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며 "로마 제국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 1,400여 년 간 서구 사회에서 권력과 공모해 독점적 또는 우월한 지위를 누려왔던 그리스도교가 처음으로 그 지위를 박탈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그 동안 그리스도교는 비그리스도교인들에게 순응을 요구하고 그들의 시민권을 박탈하거나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었지만, 수정헌법 1조로 그러한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그는 "독립혁명 이후 미국은 국교가 사라지면서 종교적 측면에서 거대한 '자유 시장'이 생기고, 서부 개척으로 더 많은 (전도의) 기회가 주어졌다"며 "이러한 환경에 잘 적응한 것이 남부에서는 침례교, 북부에서는 감리교였는데, 두 교단은 이 기회를 통해 교세를 크게 확장시켰고 그 흐름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고 전했다.

또 "교회에 대한 국가의 재정 지원이 사라지면서, 개인의 자발적 참여에 의존하는 교회가 최초로 탄생했다"며 "각 교파는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야 했기에, 노예제도 폐지나 술·결투 문화 변화 등 사회개혁에 적극 나서는 활동이 중요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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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

 

뿐만 아니라 "교회는 국가의 대의에 필요한 명분을 제공함으로써 스스로의 필요성을 보였다"며 "새로운 국가가 세워진 혼란기에 교회는 성경을 인용 '신의 포도원', '언덕 위의 도성', '새 예루살렘' 등으로 신생 국가인 미 연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우면서 '국가에 충성스런 교회'로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고 했다. 오늘까지 이어지는 성경에 손 얹고 하는 대통령 취임선서나 국가 기도일·금식일, 국가조찬기도회, 상·하원 원목(chaplaincy) 제도는 그 연장선상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미국 독립혁명에 어떠한 영향을 줬을까. 지난 시간에 살폈듯, '대각성 운동'은 각자 다양했던 교파를 초월해 신대륙 사람들에게 '종교적 일치성'을 느끼게 함으로써 '하나의 연방'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했고, 몇몇 주류 교파만으로 식민지 종교지형을 설명하기 어렵게 했다. 이를 기반으로 상업·재정적 이유와 정치적 이해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미국 독립혁명이 발생한 것이다.

윤 박사는 "식민지인들에게 혁명이 터졌을 때,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정하는 데 종교적 요소가 중요했고, 혁명 지지자들은 신학적 바탕을 갖고 있었다"며 "당시 혁명을 지지하는 목회자들이 많아지면서 설교에서도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는 내용의 로마서 13장에 대해서도 '맹목적 복종을 말한 것이 아니다'는 재해석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독립혁명에 있어 종교의 역할이 어느 정도였느냐가 문제였지, 역할 유무에 관한 논쟁이 아니었다는 것.

윤영휘 박사는 "미국 독립혁명은 최초의 정교분리 모델을 확립했고, 최초로 그리스도교가 특권적 지위 자체를 공식적으로 포기함으로써 적어도 법률적으로는 종교가 공적 영역에서 사라진 사회를 시작하게 했다"고 정리했다.

윤 박사는 다음 시간에 '혁명 2: 영국 노예무역 폐지 운동과 복음주의 정치가들의 Silent Revolution'에 대해 강의할 예정이다. 강연은 오는 5월 30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7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되며, 수강료는 12만 원이다. 추후 수강생들에게는 강의 내용을 책으로 출간해 한 부씩 증정한다(문의: 02-333-5161(내선 600), eun@hsbook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