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 연대기'에 대한 두번째 반박글 입니다.
첫번째 반박글에서, 저는 어거스틴과 칼빈이 창세기의 6일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을 했습니다. 간단히 줄이자면, 어거스틴이 창세기를 비유적으로 해석하려 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그의 생애 동안 비유적 해석과 문자적 해석 사이를 왔다갔다 했었고, 해석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으며, 결과적으로 그는 비유적인 해석을 통해 창조의 오랜 연대를 생각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하나님이 세상을 뿅! 만드셨는데, 그것을 모세가 6일로 비유적으로 설명했다는 일명 '순간 창조'를 주장했다는 것, 그리고 칼빈의 경우 그런 순간 창조 조차도 비판하며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6일 창조로 이해해야한다고 주장했으며, 어거스틴과 칼빈 모두 지구의 나이를 6,000년이 조금 안된 (혹은 5,000년이 조금 넘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들의 글을 통해서 확인시켜 드렸습니다.
오늘은 성경의 해석에 대해서 말씀을 나눠보려 합니다.
성경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탄의 제 1 공격 대상이었습니다. 당연합니다. 전쟁 중에 상대방의 가장 중요한 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전략입니다. 인간의 유한하고 불완전한 지식을 이용해서 말씀을 인간이 이해하는 수준까지만 믿도록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론 연대기 12화에서 문자적 해석이 나쁜 것이 아니지 않냐고 반문하는 주인공 준이에게 신학생인 사촌 누나는 창세기를 6일로 이해하는 것이 진짜 문자 그대로 읽는 것이냐고 되묻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클릭하시면 창조론 연대기 12화로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진짜 문자 그대로 읽으려면 히브리어로 읽어야지, 근데 히브리어도 그냥 읽는게 아니라 당시 고대 근동의 문화적, 역사적 맥락! 본문의 문법 구조! 파악하고 읽어야 되는거야!"
그러면 히브리어로 읽으면 성경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일까요? 당시 고대 근동의 문화적 역사적 맥락과 문법 구조를 파악하면 창세기의 하루는 다른뜻이 되는 것일까요? 다시 얘기해서 모세가 창세기를 쓸 당시에 사람들이 창세기를 읽었다면 하루를 24시간으로 이해하지 않고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을까요? 재밋는 것은 준이의 사촌 누나가 문자적 해석을 하지 않았다고 밝힌 네 명의 신학자 대부분은, 히브리어를 전혀 모르거나 능통하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1 특히 어거스틴의 경우는 오역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Vulgate 역으로 성경을 읽었고, Vulgate 역 창세기에는 그의 생각에 영향을 주었을 만한 오역도 있었다는 점 입니다.
그렇다면 모세 당시에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엿새 동안에 주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주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0:11>
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 있을 영원한 표적이니 이는 주가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며 상쾌하게 되었기 때문이니라, 하라. <출애굽기 31:17>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에 대한 율법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라고 할 때에, 엿새를 어떠한 긴 시간이라고 상징적으로 받아들였을까요? 모세는 두 번이나 안식일의 이유를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 하셨기 때문임을 설명하면서 백성들이 이 말을 상징적으로 받아들이기를 의도했던 것일까요?
그렇다면 히브리어에 능통했던 다른 사람들은 창세기를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중세에 활동했던 유대인 랍비들이 생각했던 지구의 연대
저는 12세기에 활동했던 유대인 해석가이자 랍비, Avraham Ibn Ezra의 창세기 해석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Ibn Ezra는 많은 유대교인들에 의해 위대한 해설가 중 한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유대교의 지도자인 마이모니데스는 Ezra의 해설을 강력하게 추천했습니다. 그의 창세기 해설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하루는 구(지구)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2
Ibn Ezra는 이사야 40장 22절 "땅의 원 위에 앉으신 이가 바로 그분이시니 땅에 거하는 자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분께서 하늘들을 휘장같이 펴시며 그것들을 거주할 장막같이 치시고" 를 해석하며 지구가 원형(2차원적으로)이라는 것을 주장했는데, 이를 창세기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며, 하루라는 것은 태양과는 관계가 없이 지구의 움직임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 입니다.
이 해설에 대한 각주를 보면 이런 그의 주장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요. 각주에는 "하늘의 구가 한바퀴를 돈다. 태양은 하늘에서 보여지지 않았으며, 하늘에 있지도 않았다."
즉 Ibn Ezra는 태양이 만들어진 넷째날 이전에도 하루는 구의 움직임에 따라 동일하게 있었으며, 이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 지구가 태양이 아니라 센타우루스자리 알파 같은 다른 항성의 주위를 돈다고 해서 하루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히브리인들의 생각은 어땠을까요? 구약 말고 세계인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유대인 문서집인 탈무드에는 지구의 연대에 대해서 어떻게 쓰여져 있을까요?
탈무드에 있는 산헤드린이라는 소논문 Folio 97a에는 메시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랍비 카티나가 말하기를 : 6,000년 동안 세상이 존재할 것이고, 기록된 대로 (일곱번째)천년은 황폐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3
그리고 그 바로 다음 Sanhedrin 97b에는 "... (두루마리에) 쓰여져 있기를 세상이 창조 되고 4,231년 후에 세상은 고아가 될 것이고... 거룩하신 한분, 송축받으실 그분이 이 세상을 7,000년 후에 새롭게 하실 것이다."
탈무드가 성경만큼의 권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당시의 랍비들은 창세기의 하루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하루로 여기고 세상이 창조된지 수천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믿고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력은 올해가 지구가 생겨난 후 5,777년되었다고 증언합니다
올해가 서기 2,017년 이지만, 히브리력으로는 5,777년 입니다. 무슨 얘기냐면, 그들은 올해가 세상이 창조 되고 5,777년이 되었다고 믿는다는 뜻 입니다.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무너진 뒤 만들어진 오늘날의 히브리력은 당시 자료의 부족함으로 구약에 기록된 족보를 정확하게 계산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들은 창조의 다음 해를 1년으로 정함으로 그들이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실제로 18세기 이전의 대부분의 유대 학자들이 세상이 창조 된지 수천년 밖에 안되었다고 믿었다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팩트입니다. 이에 대해 굳이 지구의 연대를 수천년으로 생각하지 않는 유대인 철학자 Jacob Stein 역시 전통적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창세기의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6,000년 전에 무에서 우주가 만들어졌다고 이해함을 인정합니다. 4
오랜 지구를 믿는 오늘날의 히브리어 전문가들은 어떻게 이야기 하는가?
오늘날의 많은 신학자들은 창세기를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성경의 해석에 의한 것일까요?
Gleason Archer는 아마도 많은 신학자들에게 존경을 받는 최고의 히브리어 전문가일 것 입니다. 제가 자주 시청하는 John Ankerberg 쇼의 사회자 John Ankerberg는 그와의 일화를 소개하며, Gleason Archer가 히브리어 사전에 있는 의미가 잘못 되었다며 사전 출판사에 편지를 보내어 사전의 단어 의미를 바꿨다며 그의 히브리어 전문성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런 그가 창세기의 해석에 대해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히브리어 전문가들의 창세기에 대한 성경 해석
표면적으로는 (창세기에 기록 된) 전체 창조의 과정이 24시간 6일 동안 일어났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만약 이게 히브리어 저자의 진정한 의도였다면, 지구가 수십 억년 전에 만들어 졌다는 현대 과학과 상충 되는듯 하다. 5
Gleason Archer 뿐 아니라, 수많은 오랜 지구를 믿는 히브리어 신학자들은 공통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창조론자들의 해석학적 근거가 더 강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창조론자들의 관점을 지지하는 많은 성경적 그리고 과학적인 연구가 쌓여왔음에도, (다수의 복음주의자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과학자들에게 이론(창조론)이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문제이다." 6 -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
당연히 이 기록(창세기)만 고려하면 그 단어(날)를 일반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 개념이 모세의 기록을 실제 사실(수십억년의 지구 연대)과 충돌하게 만들고, 다른 개념이 그런 충돌을 막는다면, 그 다른 개념을 채택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7 - 찰스 호지 (신학자)
솔직히, 세속 과학에 의해 발전된 증거가 아니였다면 선뜻 창세기에서 (오랜 연대를) 추론하지 않았을 것이다. 8 - 존 바튼 페인 (신학자, 해석학자)
과학이 제안하는 해석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창세기에 대한 가장 단순한 이해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일반적인 6일 동안 (6 solar days) 창조하셨고 인간이 6일째 창조되었으며 죽음과 혼돈이 아담과 이브의 타락 이후에 생겼다는 것, 그리고 모든 화석은 노아와 그와 함께 했던 동물들만 살아 남은 대홍수의 재앙으로 인해 생긴 것이 분명하다. 9 - 페틀 펀 (생물학자)
오랜 지구론자들 역시 스스로 자신들이 오랜 지구론을 믿게 된 계기가 성경이 아님을 인정합니다. 그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성경만을 해석할 때 창세기에서 얘기하는 하루는 1차적으로 24시간의 하루가 맞다. 다만 다른 해석 역시 불가능하지 않으며 세속 과학이 지구의 연대를 수십억년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둘이 상충되지 않는 쪽으로 해석하는게 맞지 않겠는가?
오랜지구론자들의 신학적 오류
그러므로 첫번째로 누군가가 창세기 1장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인 다수의 유대교 및 기독교 신학자들의 해석 대신, 비유적으로 받아들인 일부의 해설을 예로 들며 성경 자체가 해석학적으로 오랜 지구를 나타낸다고 한다면, 그는 무리한 주장을 하는 것 입니다.
두번째로 위의 신학자 분들은 모두 훌륭하고 존경받아 마땅한 분들이지만, 개혁 교회의 가장 기초가 되는 원리를 흔들고 계심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기초가 되는 원리는 5가지 솔라로 불리는 기초 중 하나인 Sola Scriptura 즉 '오직 말씀' 입니다.
세번째로, 지구가 수십억년 되었다는 것은 관념이지 과학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방사성 연대 측정이 확인할 수 없는 가정들을 통한 허상이라는 증거는 이론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많이 있습니다. 다만 오늘은 성경의 해석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기에 이 부분에 관해서는 글의 가장 아래에 관련 링크를 걸어 드리는 것으로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왜 창세기는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역사 동안 대다수의 유대교나 기독교 신학자들은 창세기의 저자는 독자들이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길 의도했음을 인정해 왔습니다. 2006년 작고한 옥스포드 대학교의 히브리어 교수 James Barr는 창세기에 있는 기록이 역사적 사실임을 믿지 않으면서도 문맥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아는 한 세계적인 대학교(World-class university)의 히브리어나 구약학 교수 중 창세기 1~11장의 저자가 (a)우리가 경험하는 24시간의 6일 동안 창조가 일어났다는 것 (b) 창세기의 족보에 있는 숫자들을 단순히 더하기만 하면 세상의 시작부터 성경 이야기에 나온 나중의 시대까지의 연대를 나타낸다는 것 (c) 노아의 홍수는 방주에 탔던 이들을 제외한 모든 인간과 동물을 멸종시키기 위한 전세계적인 홍수라는 것을 전달하고 싶어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대로 얘기해서, 창조의 "날들"을 오랜 기간으로 가정하며, 족보의 숫자들이 연대기적이지 않고, 지역적인 메소포타미아의 지역적인 홍수라고하는 변증가들의 주장은 제가 아는 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10
창세기 1장의 해석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큰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날(Day)을 뜻하는 히브리어 욤(יום) 의 해석 입니다. 일반적으로 욤은 영어와 비슷하게 세 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24시간의 하루라는 의미, 두번째는 밤에 반대되는 12시간의 낮이라는 의미, 세번째는 어떤 시대나 시간을 나타내는 의미입니다.
오랜 지구론자들은 창세기의 욤을 세번째 의미로 해석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문법적으로 그것이 맞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히브리어 문법적으로 창세기의 저자는 24시간 6일의 창조를 의도했습니다
Andrew Steinmann은 콘코디아 대학에서 신학과 히브리어를 가르치는데, 그는 창세기가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 믿지는 않는다고 하면서도, 창세기의 저자가는창조가 24시간의 6일 동안 일어났음을 의도했다고 확신합니다.
그는 이렇게 얘기 합니다.
"저녁이 있었고, 아침이 있었다. 1 일" 이라는 구절은 기본적으로 저녁과 아침이 하루라는 것을 얘기해주는 것입니다. 이 문맥에서 욤은 분명하게 일반적인 날을 의미합니다. 이는 해가 떠 있는 낮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어떠한 시대를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며 저녁 그리고 아침이 된다고 기록한 것은 시간이 지나며 빛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 '욤'임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얘기해서 만약 창세기의 날을 뜻하는 히브리어 욤이 어떠한 오랜 시간을 의미했다면 저녁이 있었고, 아침이 있었다!(וַֽיְהִי־עֶ֥רֶב וַֽיְהִי־בֹ֖קֶר יֹ֥ום אֶחָֽד׃ פ) 라는 설명이 없었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창세기의 저자는 첫째 날 동안에 빛으로 인해 어두워 졌다가, 빛으로 인해 밝아진 어떤 사건이 있었고, 이것이 둘째날, 셋째날... 계속 반복이 되었다고 얘기하는 것 입니다.
이에 대해 칼빈은 이렇게 주장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창조의 바로 그 명령에 의해, 해와 달이 없이도 우리에게 보내주실 수 있는 빛을 그의 장중에 가지고 계셨다. 더욱이 문맥으로 보아 빛이 그렇게 창조되어 어둠과 교대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그러나 밤과 낮의 순서가 계속 교대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1
또 문법적인 해석과 별도로 오랜 지구론자들이 주장하는대로 창세기가 시적 표현이거나 비유적 표현이 아닌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는 또 있습니다.
통계학적으로 입증하는 창세기 1장의 역사적 서술
과학자이자 히브리어 학자 Steven Boyd는 성경의 해석문제를 통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히브리어 구조에 대한 통계적 분석을 했고, 과거 시제와 완전 정형 동사(Total finite verbs)의 비율을 계산 했습니다. 역대상,하와 같은 모두가 역사적인 서술로 인정하는 구절들 그리고 시편과 같이 모두가 시라고 인정하는 구절들을 장별로 구분해서 비율을 계산하고, 기준이 되는 비율을 정했습니다.
창세기 1:1~2:3이 역사적 서술일 확률은 99.9972604%로 굉장히 높았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모두가 인정하는 역사적 서술들과 시적인 표현들에 이 기준을 적용시키자 아래와 같은 그래프가 완성이 되었습니다.
세로축은 성경의 내용이 역사적 서술일 확률이고 가로축은 과거 시제와 완전 정형 동사의 비율 입니다. 과거 시제가 완전 정형 동사에 비해 많으면 많을 수록 역사적 서술일 확률이 높아지며 그 반대라면 시적인 표현일 확률이 높은 것 입니다.
위에 말씀드린 확실한 역사적 서술과 확실한 시적 표현을 이 공식에 적용시켜 봤을 때, 단 두개의 예외만을 제외하고 모두 예측에 들어 맞았습니다.
그렇다면 창세기는 이 그래프의 어디에 있을까요? 창세기 1:1~2:3까지의 비율을 조사한 결과, 창세기 1장이 역사적인 서술일 확률은 99.9972604%로 굉장히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어떠한 인간의 감정이나 지식과 전혀 무관하게 데이터를 입력하고 그 데이터에 따라 결과를 산출하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물론 이런 통계적인 방법에 예외가 분명히 있을수 있지만, 적어도 확률적으로는 창세기 1장의 창조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책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성경을 믿지 못할까?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보신 것을 전달하신 성경이 있습니다. 왜 우리는 당시의 상황을 추정만 할 수 있는 인간의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정확한 것으로 가정해야 할까요? 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당당하지 못할까요?
역사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유주의 노선을 받아들인 많은 유럽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현재가 어떠한지 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던 교회는 말씀을 버림으로 술집이 되어버렸고, 그들이 지은 예배당은 이제 십자가 대신 달이 달린 무슬림 사원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유럽에 비해서 진화론을 늦게 받아들였고, 지금도 사실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무신론자들이 많아졌고, 또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이제 미국은 점점 기독교의 쇠퇴를 눈앞에 목격하고 있습니다.
유신진화론이 한국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분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하셔서 새로운 종류의 생물들을 만들기 위해 5번의 대 멸종을 일으키시고는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겠습니까? 그러고는 노아의 홍수를 일으키시면서 안타까워 하셨습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지금 그런 하나님을 믿으라고 전도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런 하나님을 믿겠습니까?
References
1. James Eglinton - On Theology and Language learning 2015.04.22
2. Ezra, I., Commentary on the Pentateuch, Genesis (Bereshit), translated and annotated by Strickman H.N. and Silver A.M., Menorah Publishing Co., New York, USA, 1999.
3. Babylonian Talmud : Tractate Sanhedrin Folio 97a
4. Jacob Stein - How I understand Genesis - Torahphilosophy.com
5. Gleason L Archer, A Survey of Old Testament Introduction, Moody Chicago, 1985
6. Montgomery Boice, Jenesis:An Expositional Commentary, Zondervan Publishing House, Michigan 1982
7. Charles Hodge, Systematic Theology, Wm.B.Eerdmans Publishing Company, Grand Rapids, MI USA 1997
8. J.Barton Payne, The theology of the Older Testament (Grand Rapids, Zondervan, 1972)
9. Pattel Pun, Journal of the American Scientific Affiliation 39 : 14 1987
10. Barr, J., letter to David C.C. Watson, 23 April 1984.
11. Calvin, J., Genesis, 1554; Banner of Truth, Edinburgh, UK, 1984.
[출처:fingerofgtho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