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 김병삼 목사
(Photo : ) 김병삼 목사

지난 주 몇몇 크리스천 정치인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목사인 저에게 이런 요청을 하더군요.

"목사님! 이 시대에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목사님! 젊은이들을 향해 괜찮다고, 용기를 내라고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목사님에게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그런 목사님이 되어 주세요."

제가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지금 국회에도 정부에도 크리스천들이 많은데, 왜 그런 분들이 소망이 되기는커녕 욕을 먹는 사람이 되었나요?"
그러자 이렇게 말을 합니다. 
"목사님! 그 사람들 크리스천 아닙니다. 단지 신앙 있는 척 복음을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한 주간 그런 생각을 하며 지났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신앙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제는 이런 구분이 필요하겠구나.
복음을 지키는 자가 있고, 복음을 이용하는 자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성경에는 아주 중요한 사상이 있습니다. 
이사야에 나오는 '남은 자' 사상이죠.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끝까지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 자들을 구원하시겠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남은 자'들 찾고 계시다는 것이죠.
구원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이 '남은 자'들을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하시고, 이들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신앙의 영웅들은 바로 이 신앙을 지킨 '남은 자'들이죠.

그런데 소수의 남은 자들이 드러나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이 증명되면, 남은 자들을 흉내 내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가시적으로는 교회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죠.
그것을 우리는 '교회 부흥'이라고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 부흥에 함정이 있습니다. 수많은 무리들 가운데는 복음을 지켜내는 남은 자들보다는, 남은 자들을 흉내 내며 '복음을 이용하려는 자'들이 몰려들기 때문이죠.

그렇게 복음을 이용하려는 자들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면, 하나님의 교회는 핍박을 받고 세상으로부터 조롱거리가 됩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그런 때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며 처음으로 개신교가 대한민국에서 종교비율이 1위가 되었다고, 불교와 천주교의 인구가 줄어들었는데, 유일하게 100만이 넘는 증가율을 보였다고 자랑과 안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교회가 자랑스럽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멸시와 조롱 그리고 더욱 외면당하고 있지요.

우리 공동체와 우리들 스스로를 돌아보면, 복음을 지키 내는 자들이 아니라 복음을 이용하려는 자들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요?

복음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져야할 것을 지고, 우리에게 주신 가시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마땅히 져야하는 십자가가 혹시 '영광의 자리'에 올라가기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리지는 않았는지 말입니다. 
십자가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목적'이 된 사람만이 주어진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려고 예수님을 찾아왔던 사람들과 제자들이 십자가를 지기위해 골고다로 향하는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 부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깊이 생각하게 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명 전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처럼 살고 싶어서, 예수님을 흉내 냅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가셨던 길을 따라 걷다가, 결국에는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립니다.
그런데 십자가 아래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조롱합니다. 예수님이 달리셨을 때처럼 말입니다. 도저히 그 조롱을 참을 수 없었던 이 사람은 십자가에서 내려와 조롱하는 사람의 뺨을 때립니다. 
맞은 사람도 때린 사람도 어이가 없는 상황이죠.
이 사람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십자가에 올라가려고 뒤를 돌아보니, 이미 십자가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땅히 져야할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내려오면,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는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묵묵히 지며 지켜 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크리스마스에 그런 설교를 했습니다. 혹시 우리 인생에 가시가 있다면, 혹시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가 있다면 그저 묵묵히 지고 가자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말입니다. 십자가를 벗겨 주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우리와 끝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말입니다.

이 시대에 '복음을 지켜내는 자'들이 필요합니다. 십자가를 지며 복음을 지켜내야, 우리의 삶이 복음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오늘도 '치열함'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