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의 네비우스 삼자원리, '자립'(self-support), '자전'(self-propagation), '자치'(self-government)의 성공적인 적용으로 놀라운 교회 성장과 부흥을 이뤘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지난 수십 년 간 선교지에서 네비우스 자립선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많은 선교비를 지원했는데도 불구하고, 선교사의 후원에 의존하는 현지 교회를 생산함으로 자립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차로 6시간 떨어진 잠발레스 이바에서 사역하는 원인규·편미선 선교사는 자립선교의 원칙을 실현하여 현지인 교회를 자립교회로 세운 것으로 필리핀 한인선교사 사이에 유명하다. 원인규 선교사를 앙겔레스에서 만나 인터뷰 하고, 추후 이메일 등을 통해 자립선교의 성공 비결을 들어보았다.
원 선교사는 1993년 GP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필리핀 중동부의 사마르(Samr) 섬 내 와라이(Waray) 종족을 위해 성경학교와 지역개발 사역을 했다. 이후 GP 국제총무로 4년간 사역하고 1998년 북미 알래스카로 파송되어 필리핀 이주자들을 위한 필리피노 교회 개척을 했다. 2005년에는 다시 필리핀으로 파송돼 잠발레스에서 사역하다가 2007년 GP 한국본부의 요청으로 국제부 사역을 했다. 이후 2010년 지금의 잠발레스 이바 지역으로 오게 되었다.
필리핀에서 자립하는 현지인 교회 모델 제시
"한국의 신앙이 좋은 청년들이 결혼을 합니다. 결혼식을 검소하게 치르고, 비용을 절약해 선교지에 교회를 멋지게 세우자고 담임목사가 도전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박수 쳐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환영하지 않습니다. 왜 선교지 교회가 한국 청년들의 결혼 비용을 줄여 헌금한 돈으로 세워져야 하느냐는 이야기죠. 필리핀 교회는 필리피노(필리핀인)에 의해 세워져야 합니다."
원인규 선교사는 자립선교에 대해 설명하다 위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또 다른 예도 들었다. "아이 엄마 성도들이 늘면서 선교사들이 갈등할 수 있습니다. '에어컨을 놓으면 안될까?' 그런데 저는 안 놓습니다. 계속 안 놓을 것입니다. 에어컨이 한 대 있으면 호젓하고 엄마들도 좋아하고, 성도들이 더 많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주님께서 부르셔서 제가 다른 사역지로 가거나 그 교회에서 계속 사역하지 못할 때, 자신들의 힘으로 에어컨을 유지할 수 있는 재정적 여유가 없다면 계속 안 놓는 것이죠. 여유가 있다면 아무 상관 없겠지만요."
1인당 국내총생산(GDP)만 단순 비교할 경우 필리핀(1인당 GDP 2,913달러, 2016 IMF 추산)은 현재 한국의 1980년대 후반과 비슷하다. 189개국 중 133위다. 필리핀과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자립선교를 이뤄낸 원인규 선교사는 현재 빈민촌교회 1곳, 시골교회 2곳, 시내의 청년 중심 교회 1곳 등 총 4개 교회에서 사역한다. 차로 20분 간격으로 떨어진 4개 교회는 사각형 모양을 이루며 위치해 있다. 주일이면 빈민촌교회에서 오전 10시에 설교한 후 나머지 세 교회 중 한 곳에서 설교한다. 그 외 교회는 목회자는 아니지만, 현장의 사역자들이 설교를 전한다고 했다. "교회 규모는 100여 명 선으로, 더 크게 하는 분이 많다"고 그는 덧붙였다.
자립선교를 시도한 동기를 물어보자 "특별한 동기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대신 처음에 교회 사역을 시작할 때 선교사의 태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얼마나 조심하면서 안 주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정이 있고, 필리피노의 삶을 비춰볼 때 우리는 여유가 있으니 당연히 주고 싶지요. 그런데 성경적인 선교는 '얼마나 조심스럽게 안 주느냐'에 있습니다. '돈'을 주는 것을 자제하고 얼마나 조심하느냐에 자립선교가 달려있습니다. 의존하려는 것을 처음부터 방지하는 것이죠."
그는 "사람 심리가 필리피노뿐 아니라 누구든지 받다 보면 의존하게 된다"며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니 동역자도 안 되고, 형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처음부터 '아무 생각 없이', '조심하지 않고' 주다 보면 이미 현지 교인들은 받는 데 익숙해지고, 어느 시점에서 주는 것을 멈추는 것이 힘들게 된다는 뜻이었다. "약 330년 간 스페인의 긴 식민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어떤 필리피노는 얼마나 영리하게 외국 사람들의 돈을 끌어내느냐를 유능함의 척도로 보기도 합니다."
'주는 것' 조심하고 헌금에 대해 가르치면서 삶의 본 보여야
원인규 선교사는 자립선교의 비결에 대해 "처음 선교지에 도착했을 때 필리핀 교계 어른이 도전한 두 가지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것만은 지키려고 노력해 왔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필리핀 현지 교계 지도자는 제게 두 가지를 도전했는데 '필리핀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싶으면 첫 번째, 그 사람들의 가슴의 언어(heart language), 즉 영어가 아닌 국어 따갈로그어를 하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갈등하지 않고 국어를 배웠습니다. 대부분 선교사님은 국어를 할까, 영어를 할까 고민하다 영어를 상용어로 선택하는 분이 제법 많습니다. 저는 1993년 필리핀에 처음 와서 따갈로그어를 9개월 간 배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잘 선택한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정말 필리핀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 스스로 서기 원하면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필리핀 사람들에게 하면 조금 기분 나빠하기도 합니다. '당신(선교사)들이 여유가 있으면 당연히 줘야 하지 않느냐. 외국 선교사에게 받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합니다. 부인할 수 없어요. 그러나 자꾸 받다 보면 '주고 받는'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자립을 돕기 위해 성도들에게 성경적 '헌금'에 대해 무던히 강조하고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빌립보서 4장에 보면,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세우고 데살로니가에 갔을 때, 또 고린도에 갈 때도 빌립보 교인들은 재정적으로 바울을 항상 도와주었습니다. 그들의 헌금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생각이 있으면 헌금을 합니다. 그 다음, 헌금이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제대로 헌금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을 하나님이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아는 것이죠."
그는 또 헌금이 낭비하고 허비하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심으면 반드시 싹이 나고 열매를 맺어 수확하게 되는 것'임을 가르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내놓는 것에 대한 성경적이고 잦은 가르침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의 교회라 할지라도 그 교회의 자립 여부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원 선교사는 선교사 역시 헌금에 대한 본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인들도 선교사의 삶을 보면 압니다. 선교사가 물질을 자기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쓴다는 것을 보게 되면 헌금을 안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목사님은 정말 근면하게 살려고 한다는 것을 보면 다를 것입니다. 자칫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는데, 필리핀에서 저는 '꼬리뽓'(kuripot, 짠돌이·구두쇠)으로 불립니다. 1998년 알래스카에 들어간 후 한국이 IMF 사태로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 한 달에 여러 후원자들로부터 총 250달러에서 300달러를 받으며 생존한 경험이 있어요. 필리핀은 알래스카보다 물가도 싸고 구입하지 않고도 먹을 것들이 많으니 살기 더 수월한 편이죠."
필리핀 교회를 선교적 교회로
필리핀에서는 여전히 가톨릭(인구의 83%)이 기득권을 가지고 있지만, 옛날에 비해 기독교(9%)의 입지가 많이 좋아졌다. 필리핀에도 메가처치가 생겨나, 마닐라에만 Victory Christian Fellowship(VCF), Jesus Is Lord Church(JIL), Christ's Commission Fellowship(CCF), Greenhills Christian Fellowship(GCF), Bread of Life Ministries International(BOL) 등 5곳이 있다. 3만여 교회가 가입된 필리핀 최대 교계 연합기구인 필리핀복음총연합회(PCEC) 회장을 역임한 에프라임 텐데로 감독은 작년 세계복음연맹(WEA) 총무로 취임했다. 그러나 대부분 현지인 목회자는 아직도 한 달 사례비로 1만 페소(한화 약 25만 원)도 못 받는 열악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필리핀 교회와 필리핀 디아스포라 교회를 해외 선교에 동원하는 노력이 현지 교계와 선교사계에서 지속되고 있다. 특히 필리핀 국민의 10%는 디아스포라로, 이미 영어를 잘하고 문화적으로도 준비된 필리핀 디아스포라 교회를 선교적 교회로 동원하는 일에 원인규 선교사는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선교지 교회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선교를 안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온 민족에게 전파되게 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구원만 강조하고 선교를 안 한다면 성경이 강조하는 두 가지 핵심 주제인 구원과 선교 중 반만 믿는 것이죠. 구원과 선교는 절대 분리돼서는 안 되며, 교회가 해야 하는 정말 중요한 두 가지 일입니다. 필리핀 교회와 필리핀 디아스포라 교회가 선교적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를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