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천사'는 올해도 변함없이 찾아왔다. 누군가 지난 2000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약 5억 원의 성금을 기부하고 있다. 여전히 신원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얼굴 없는 천사'다. 그의 선행이 더 없이 춥기만 한 이 겨울을 녹이고 있다.
전북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에 따르면 '얼굴 없는 천사'는 28일 오전 11시 8분 경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나무 밑에 있으니까 가져가시고 어려운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서 써주세요"라는 말을 남겼다.
그곳엔 A4 복사용지 박스가 놓여 있었고, 그 속엔 약 5천만 원의 지폐 다발과 함께 돼지저금통이 들어 있었다. "소년소녀 가장 여러분, 힘든 한 해였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라는 선물이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힌 종이와 함께.
이 '얼굴 없는 천사'는 지난 2000년 4월 3일 약 60만 원을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18차례, 이렇게 익명으로 성금을 기부하고 있다. 주민센터 측은 이를 어려운 가정을 위해 쓰고 있다. 또 그의 성실한 기부에 감동해 지난 2009년 '얼굴 없는 천사' 기념비를 세웠고, 지난해엔 기부천사 쉼터도 조성했다.
이런 '이름 없는 천사'는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지난 2014년 12월 14일 오후 7시 45분경 서울 명동 입구에 설치된 자선냄비에 누군가 봉투를 넣었다. 다음날 구세군은 그 봉투에서 수표 1억 원과 사연이 적힌 쪽지를 발견했다.
▲'신월동 주민'이 지난 2014년 자선냄비에 넣은 편지와 수표. ⓒ구세군 |
"저에게 도움을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고 아버지의 뜻을 이해해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위들 딸들에게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고 싶으며 새해에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많은 발전이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기원해 봅니다. 2014년 12월 13일 신월동 주민 올림"
'신월동 주민'은 그 때까지 4년 동안 매년 1억 원을 이렇게 '이름 없는 천사'로 기부해 왔다. 이후 구세군 측은 그의 신원을 알아냈고, 그를 '베스트 도너'로 선정했다. 그는 올해도 1억 원을 기부했다. 그러면서 "힘들 때 서로 도와야 한다. 작지만 나눔을 확산하는 마중물이 되고자 기부하게 됐다"고 밝혔다.
최근 혼란한 시국 때문인지, 기부 현황을 표시하는 '사랑의 온도탑'이 예년에 비해 뜨겁지 않다고 한다. 지난 12월 15일 사랑의 온도는 17.8도였는데, 작년 같은 날짜엔 43.3도였다. '얼굴 없는 천사들'의 선행이 반가운 이유다.
구세군 김필수 사령관은 "여러 이유로 올해 연말이 더 춥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들려오는 작은 나눔의 소식들이 추운 이 겨울을 따뜻한 온기로 녹이고 있는 듯하다"며 "우리 민족은 어려움 속에서도 그것을 한 마음으로 극복해 왔다. 비록 힘든 상황이지만, 나보다 더 힘든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얼굴 없는 천사'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