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얼마 전 그 친구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어릴 때부터 매우 가까운 친구였지만 자주 만나지 못했던 아쉬움과 몸이 불편하셨던 그 친구의 아버님을 지난 몇 년간 한 번도 방문하지 못했다는 죄송함이 생겼다. 3일 후 가족끼리 장례식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겨서 찾아갔다. 그랬더니 정말로 직계 가족들과 몇 명의 친척들만이 모여 환송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 친구의 아버님께서 늦게 목사님이 되신 분이라서 오히려 마음에 많은 위로와 소망을 얻었다.
설교 시간이 끝나고 곧바로 조사가 있었다. 그 때에 친구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하여 쓴 글을 10여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어떠한 분이셨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빠”라고 불렀다. 보통 때에도 그렇게 불러 드린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사람들을 앞에서 그렇게 하니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10여분이 넘는 시간 동안 수 십 번 “아빠”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자신의 아버지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으니 어느새 나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자주 뵙지는 못했지만 50이 넘은 나이에 90이 넘은 아버지를 “아빠” 고 부르는 사랑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60세가 되어가는 누나에게도 변함없는 아빠였고 가족 모두에게 사랑이 많으셨고 존경하던 아빠였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나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50세가 넘고 또한 70세가 넘어도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담 없이 불러드릴 있는냐는 것이다. 예의를 갖추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쉬운데,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아빠가 되신다. 멀리서 팔짱을 끼고 보시는 분이 아니고, 나를 보실 때에 목을 길게 하고 기다리시며, 나에게 달려오시는 것 같이 사랑하시는 분이시며 모든 것을 아뢸 때 모든 것에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내가 혼자라고 할 때에도 늘 함께 하시며 돌보아 주시는 주님이시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가? 하나님 “아빠” 앞에 나는 모든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는 아이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빠”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 같이 자녀라고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늘 감사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빠”라고 외치며 달려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라디아서 4장 6절)라고 말씀하신다. 지금도 나를 그 사랑의 긴 팔로 안으시며 위로하신다. 하나님은 나의 “아빠”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복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언제고 달려갈 수 있는 아빠가 계시고, 언제고 응석을 부릴 수 있는 아빠가 계시며, 어떠한 문제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최고의 아빠가 계시기 때문이다. 이제는 기도할 때에 “아빠”를 외치며 기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받으시며 기뻐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