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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을 보는 눈

 

배본철 | 영성네트워크 | 374쪽 | 15,000원

"목사님 어떤 게 이단이에요?"

성도들에게 가끔 질문을 받는다. '저건 왜 이단이에요?' 그럴 때마다 솔직히 좀 난감하거나 곤란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분명히 잘못된 교리들을 가르치는 집단들은 명백하게 이단이라고 설명할 수 있지만, 필자의 정보가 부족하다거나 실제로 모호한 경우에 어설프게 추측성 발언을 한다는 것은 엉뚱한 이들에게 누명을 씌우는 죄를 범하기 때문에 그렇다.

일반적으로 이단 문제를 판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잣대는 먼저 교리적으로 구원론, 삼위일체론, 기독론, 성령론에 대한 교리적 가르침에 문제가 있을 경우이다. 그러나 성령론은 아직 우리 자체 안에서 매우 불안정적이기에, 섣불리 성령론으로 이단을 판단하는 것은 김기동의 귀신론과 같은 분명한 잘못들 외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두 번째로 이단을 판명하는 기준은 교회론이다. 이것은 교리적이라기보다는 엄밀히 말해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어떤 인물이나 집단이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서 복음적 교회론의 일치성을 훼손하여 교계의 질서를 크게 어지럽히게 될 때, 그들은 전체 교계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받게 된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판명된 이단  

고대교회의 대표적 이단들로 지목된 몬타니즘이나 도나티즘의 경우, 그들은 분명히 성령론과 구원론적 가치를 향한 강력한 갱신을 추구함으로 분명 회개와 개혁의 경종을 울리는 데 성공하였으나, 자신들의 가르침만이 성경적으로 문제가 없고 자신들만이 정통교리에 서 있다는 식의 독선적 형태는 교계의 질서를 무너뜨린다. 자신들만의 잘못된 선민의식과 독선적·배타적 태도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등, 교회론의 문제로 말미암아 이단으로 판명되는 안타까움을 낳게 되었다.

교권주의

다른 한편으로 이단의 정죄와 배척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의심집단을 평가하는 일부 교계의 태도도 온당치 않다. 그 이유는 말 그대로 '정죄와 배척'이 목적이고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교회와 성도들을 바른 길로 이끌려고 하기보다는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와 같이 꼬투리를 잡기 위해 의심하고 조사함으로 쓸데 없는 가십거리나 정치적이고 당파적인 압박이나 교권의 힘에 굴복시키려 하는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성도들을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하고,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회유시키는 일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이다.

'카더라' 통신

지금 이단에 대한 한국교회의 시급한 문제점은 일반 성도들에게 이단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식이 없이, 남들이 이단이라고 하니까 나도 이단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무엇 때문에 이단인지를 질문하면, 자신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어떤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이 이단이라고 '카더라'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일이 세상에서 벌어졌다면 '명예훼손' 소송이 걸리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위험한 발언들을 무책임하게 방임해서는 결코 교계에 이롭지 않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본서의 저자는 교회역사학자이면서 성령론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본서가 주는 유익 중 하나는 바로 교회사적 관점에서 이단들의 역사와 그 문제점들을 소개해주고 있다. 그리고 본서의 저자는 역사적 관점에서 교리적 내용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된 것보다는 교회론적 독선과 독단적 행위들 때문에 이단으로 정죄되는 경우가 더 많았으므로, 교회의 개혁이나 갱신 운동들을 펼칠 때 연합성과 일치성에 대해 신중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성령론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방언, 계시와 예언, 귀신론, 성령론의 딜레마, 은사운동 대 복음주의를 다루고 있는데, 아직 완성된 부분이 아니지만 앞으로 성령론의 입장에서 이단 문제로서 이러한 주제들은 앞으로 계속해서 논의하고 연구하고 다루어가야 할 주제들임이 분명하다.

본서의 저자는 이단의 평가 잣대에 대해 특정 교단의 교리나 신학노선만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복음주의 계열의 교단 전체를 수용할 수 있는 넓은 잣대를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그것을 '교회사적 분별법'으로 명명하면서 교단마다 이단이다, 아니다를 번복하거나 혼란을 초래하지 말고, 이단 문제만큼은 복음주의 교단 전체가 수렴되는 신중하고도 분명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단이냐 정통이냐'라는 식의 이분법적 평가가 아니라 '이단-경계-정통'으로 삼분화된 평가를 통해 '경계'적 위치를 둠으로써, 정통교회에서는 새로운 운동과 신학적 영역에 있어 신중한 연구의 대상의 기회로 삼고, 만약 위험하거나 조심스러운 부분에 대해 정확한 경고의 조치를 취하면서 문제가 있는 부분들에 대해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과 바른 노선으로 들어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반면 일부 정치 목사들의 교권적 횡포와 무분별한 편향성, 그리고 작금의 한국상황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체 교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 정권의 시종 역할을 자처함으로 납득할 수 없는 잘못된 정보와 정치적 조작 행위들을 마치 전체 교계의 결정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교권 남용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교권 남용은 반드시 갱신되어야 할 부분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갱신도 좋고, 개혁도 좋다. 그러나 너무 독선적이면 안 된다. 반대로 정통과 보수도 좋다. 그러나 이 또한 너무 독선적이면 안 될 것 같다.

이단에 대해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를 소개하는 책으로서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일독해 볼 것을 권한다.

/강도헌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운영자, 제자삼는교회 담임, 프쉬케치유상담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