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과 스바의 전설
토스카 리 | 홍성사 | 464쪽
소설의 강점은 무엇일까? 허구에 있다. 허구의 바탕에는 '상상력'이 존재한다. 눈으로 글자를 읽으며, 머리에서 내가 겪어보지 않은 그림을 그리게 하는 힘이다.
반대로 소설의 약점은 무엇일까? 마찬가지로 허구에 있다. 허구란, 말 그대로 '가짜'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소설쓰고 있네!"라는 말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이야기는 가짜입니다'라고 대놓고 말하면서 읽게 하고 그림을 그리게 하는 건, 허구이되 '현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이기 때문이다. 정말 잘 읽히는 소설의 특징은, 내가 하고 싶은 가짜 이야기를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고 독자들에게 동의를 느끼게 하는데 있다.
이번에 읽은 소설 <솔로몬과 스바의 전설>의 여러 장점 중 하나는 이런 면이 잘 살아있다는 것이다. 처음 이 소설을 집었을 때 믿음이 갔던 건, 번역자에게 있다. 지금까지 작가 토스카 리의 4편의 소설 모두, 한 분(홍종락)이 번역했다. 한 사람이 한 작가의 책을 번역했다는 건, 그 작가의 성향과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를 우리말로 정확히 번역할 거라는 믿음이 들었다.
우리가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는 작가 특유의 놀라운 상상력도 있지만, 이세욱이라는 번역자가 그의 책을 대부분 번역하면서 작가 고유의 문장 특성을 일관성 있게 우리말로 전하기 때문인 점도 있다.
그래서 그것이 소설이건, 신학책이건, 간증서이건 외국 작가 한 사람의 책은 한 명의 번역자가 계속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한 사람의 글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 그 사람의 글에 대해 많이 아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표지부터 붉은 색으로 강렬하다. 이 소설은 구약 열왕기상 10장과 역대하 9장에 기록된데다, 신약 마태복음 12장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비중있게 등장하고 있는 스바 여왕에 대해 다루고 있다.
작가는 '얼마나 대단한 여왕이기에 구약에 이어 1,000년이 지난 신약에서도 그녀의 행동을 칭찬하고 있는가?'에 주목하여 '스바'라는 나라를 추적하고 조사했다. 소설의 주안점은 솔로몬에 있지 않고, 스바 여왕에게 있다. 나는 이 소설이 '솔로몬'에 집중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성경과 상관없는 서양의 역사 소설을 읽는다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소설의 재미를 더 느낄 수 있다.
실제 원제도 'The Legend of Sheba: rise of a queen(스바의 전설: 여왕의 발흥)'으로 스바 여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선 원제에 없는 '솔로몬'을 앞에 넣었을까? 원제를 그대로 썼다면 이 소설이 기독교 소설인지, 일반 소설인지 구분하지 못할 것으로 봤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 읽고 난 내 소감은 원제 그대로 가는 것이 더 나았다고 본다. 읽는 내내 '솔로몬은 언제 나오지?' 하며 소설 자체의 이야기보단 '솔로몬'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소설에서 주는 여러 장치와 메시지를 놓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우리나라 소설 <미실>이 떠올랐다. 왕의 혈통으로 태어난 미실이 권력 다툼으로 궁에서 쫓겨나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고 다시 궁으로 돌아와 왕실 권력을 장악하는 내용으로, '선덕여왕'이란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했던 이 소설의 방식과 아주 유사하다. 마치, 작가 토스카 리가 2005년도에 나온 우리나라의 이 소설을 읽어본 것이 아닐까 하는, 재미있는 의심이 들 정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신기했던 건 남성의 권한이 지극히 높았던 당시, 여성의 권리가 한 나라를 책임질 왕이 될 정도로 높았다는 점이다. 작가도 이 부분을 이채롭게 본 것 같다. '여왕'에 초점을 맞추고, 철저하게 여성 중심의 이야기를 그린다. 여러가지로 <미실>과 겹친다. 그것이 '따라했다'는 개념이 아니라, 흥미롭게 전해 온다.
제목 앞에 붙은 솔로몬은 뒤에 나온다. 성경에서는 솔로몬이 앞에 나오고 스바 여왕은 뒤쪽에 있지만, 소설에서는 반대다. 이몽룡이 아닌 이몽룡 하인 방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 '방자전'이 주는 전복(顚覆)의 맛을 이 소설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영화 '방자전'처럼 성경에서 짧고 작게 나온 스바 여왕은 솔로몬보다 강단 있고 주체성있게 나오면서, 솔로몬의 마음을 흔들어 어찌하지 못하고 쩔쩔매게 하면서 솔로몬을 이끌고 있다. 감히 솔로몬을 말이다. 이 재미가 쏠쏠하다.
기독교 소설은 성경의 틈을 성경적 상상력으로 튼튼하게 메움으로써 성경을 더 잘 이해하고 풍부하게 해 주는데 첫 번째 의의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 재미까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꼭 필요한 장르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의 뒷날개에 올라간 토스카 리의 3편의 소설들을 보면서,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홍성사와 같은 출판사의 존재에 대해 감사를 표하게 된다. 우리나라 기독교 출판 시장에서 기독교 소설의 수요가 미미한데, 외국 한 작가의 소설책을 꾸준히 내고 있다는 점에 있어 놀라우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어렵고 좁은 길을 가고 있다. 나는 계속 소설을 사랑할 것이고 구매할 것이다. 여러분도 그러하길 바란다.
/이성구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