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하우어워스

(Photo : )

마크 코피 | 비아 | 144쪽

◈깊은 잠을 깨우다

세상에서 바라볼 때, 교회나 기독교는 어떻게 보이고 이해될까? 필자는 교회를 떠나본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기에, 여기에 대한 대답을 할 처지가 못 된다. 하지만 주변에서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간간히 들어볼 때, '종교 장사', '종교 사업'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매우 주관적 입장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들을 종합적으로 유추해 본다면, 사람들의 불안감, 근심, 어려움, 고통 등을 이용하는 '심리적 보험회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현재 교회를 출석하는 성도들을 상담해 봐도 대다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필요해서이지,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교회를 출석해야 한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본질에서부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의 글을 아직 접한 적이 없다. 본서를 통해 하우어워스에 대해 소개를 받은 셈이다. 그리고 본서가 하우어워스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들을 읽으면서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편안히 읽으려다 자세를 고치고, 허리를 편 채로 집중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내 안에 잠자고 있는 무언가를 깨우는 소리였다.

◈출판사가 나에게 문제를 던졌다

서평할 책이 도착해 포장을 열어보니, 본서와 함께 예정에 없던 <라인홀드 니버>와 <쇠얀 키에르케고어> 두 권이 같이 들어있었다. 출판사가 나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성경적 근본주의자'라고 볼 수 있는 하우어워스, '현실적 이상주의자' 라인홀드 니버, '회의주의적 실존주의자' 쇠얀 키에르케고어. 이 세 책이 만약 아이들 장난감 로보트라면 합체를 시켜 천하무적으로 만들어 버릴텐데, 아쉽게도 장난감 로봇이 아니다. 출판사가 준 뜻밖의 선물(도발)에 살짝 오기가 발동되지만, 두 권의 책을 더 선물로 받은 것마냥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

우선 먼저 읽은 <스탠리 하우어워스>부터 서평을 올리고, 나머지 한 권 한 권도 개별적으로 쓴 후, 세 권을 종합해 글을 올릴 계획이다.

◈명언의 잔치

본서는 하우어워스의 사상을 5가지 주제로 나눠 구성한 책이다. 이 사상들의 주제는 그리스도인들의 사상과 교회의 가르침 안에 스며들어 있는 자본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 실용주의, 자유주의가 왜 위험하고, 이러한 사상들이 현재 그리스도인과 교회에 어떤 위기를 초래하고 있으며, 성경과 복음의 본질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를 경고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다섯 가지 주제 모두를 61쪽에 압축시켜 놓았다는 점이다. 즉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을 잘 정리해 놓았다. 그래서 한 시도 긴장을 늦추고 볼 수 없는 책이기도 하다. 이 보다 더 핵심을 잘 요약하고 압축해서 설명해 줄 수는 없다고 본다.

압축의 묘미는 내용의 의미를 잘 포괄하고 각인시키는 문장들에 달려 있다. 필자는 읽으면서 표시해 둔 문장들을 필요할 때마다 교회의 게시판이나 벽에 붙여둘 계획이다.

◈교회에 대한 연민을 느끼며

본서를 목회자들의 필독서로 추천한다. 그러나 교회에 대해 맹목적 비판을 가하는 분들에게는 금서(禁書) 목록에 올리고 싶다. 본서가 지적하는 교회와 기독교 신학에 대한 비판은 정곡을 찌르기 때문에 너무 아프다. 요즘 교회와 기독교는 '동네북'이 돼 버린 것 같다. 가는 곳마다 비판에 비판이 이어진다. 그래서 '교회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연민의 감정이 북받친다.

하지만, 교회는 비판의 소리를 정중하게 받아들여야 산다. 특히 하우어워스와 같은, 진정으로 교회와 기독교를 사랑하는 비판자들을 곁에 두고 함께해야 한다.

◈내러티브

본서는 하우어워스의 신학에 대해 '내러티브 신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지식에서 멈춰선 신학, 지식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신학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되는 신학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신학은 삶으로 증명되고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이 세상에서 행함으로 세상과 구별돼야 함을 강조한다.

◈외과의사

수술도 쉬운 수술과 어려운 수술이 있는 것으로 안다. 현재 기독교와 교회의 상황을 몸으로 비유한다면, 암 세포가 여러 곳에 전이돼 퍼져 있고, 중요 부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위험한 부위와 밀착돼 있는 것만 같다. 문제는 환자인 교회가 자신의 몸이 이 지경으로까지 된 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우어워스가 말했듯 성경과 그리스도의 복음에 비춰 자신을 검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상과 신학에 비춰 검사하면서 문제를 더 키웠기 때문이다.

물론 신학은 우리 신앙에 중요하고도 좋은 거울이 될 수 있고, 또한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우어워스는 그 신학이 자본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 실용주의에 물들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하우어워스가 오랜 시간동안 수련되고, 임상경험이 풍부하고 뛰어나며, 매우 진실되고 솔직하며, 그 누구보다 교회를 사랑하는 신학적 외과의사이기 때문이다.

그가 뛰어난 신학자라는 것은 본서의 후반부에서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원제 'The Theological Ethics of Stanley Hauerwas'.

/강도헌 편집위원(크리스찬북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