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해외 한국인 사건사고는 1만4천여 건이고, 이 중 선교사 관련 사건사고는 100여 건을 차지했다. 선교사 관련 사건사고가 차지하는 비율은 0.7%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테러가 상시화, 무차별화된 지금 해외 한인선교사와 디아스포라 교회, 단기봉사자, 성지순례객 등에 대한 안전 관리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외교부의 요청으로 한국 선교계는 지난달 20일 한인선교사의 안전강화를 위한 업무협력약정(MOU)을 체결했다.
11일 후인 지난달 31일, IS(이슬람국가)는 자신들의 온라인 영문 선전잡지 '다비크'에서 기독교를 테러 표적으로 공개 선언했다. 이들은 '십자가를 파괴하라'는 제목의 글에서 '서방에 숨은 전사들은 지체 없이 기독교인을 공격하라'며 기독교인을 향한 테러를 선동했다. 정부와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한국위기관리재단(KCMS)의 협력을 강화하는 MOU 체결은 시의적절한 조치였던 것이다.
MOU의 구체적인 내용은 ▲세 기관이 해외 파송 선교사 및 가족의 안전과 관련된 파송 국가의 위기 정보를 공유하고 ▲해외 파송 선교사 및 가족에게 발생하는 해외 사건·사고의 즉시적 대응을 위해 핫라인을 구축하고, 원만한 사건·사고 처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또 이를 위해 ▲KWMA와 KCMS는 외교부가 요청할 경우 선교사의 위험지역 방문 자제, 해외 파송 선교사 및 가족의 안전과 관련된 외교부의 안전정보 전파 및 선교사 계도 요청에 최대한 협조하고 ▲외교부는 KWMA와 KCMS가 요청할 경우 선교사 파송 전 교육, 지역별 위기관리 교육 시 교육자료 제공 및 강사 파견 등 안전의식 제고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2007년 아프간 사건 이후 KWMA와 KCMS가 정부와 함께 노력해 온 위기관리 사업 내용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기독교 선교의 특성상 각 단체에서 들어가고 싶은 지역이 정부가 정한 위험지역이라고 해서 제재를 받는 것도 아니다. 다만 위험지역 방문 시 KCMS 등이 직접 나서 지금보다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안전정보를 전하고 계도하는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사실상 전 세계에서 법적으로 들어갈 수 없는 여행금지국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여행금지국 제도는 아프간 사건 이후에 생겼다. 그만큼 다른 나라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되 철저한 자기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시점에 외교부의 요청으로 체결한 MOU가 한국교계와 선교계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정부는 선교계와 이전보다 더 긴밀한 협력을 요구하면서 각 기관의 안전 관리에 더 큰 '책무'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계와 선교계가 정부가 나서서 일일이 관여할 수 없는 부분까지, 보다 적극적으로 이들의 신변안전 관리에 신경 써 달라는 의미다. 외교부는 지난달 26일 외교부 주관 선교단체 안전간담회에서 "선교사들이 '스스로 안전의식'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MOU가 해외에서 사건·사고 발생 시 정부의 면피성 조치가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위기관리 전문가들은 "원래 미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는 정보 공유 및 계도, 권면 등의 역할만 하고 신변안전은 개인이나 파견 단체가 책임지도록 한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아프간 사건 이후 정부와 일부 국민이 과민 반응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KCMS는 "사단법인으로 위기관리에 한계가 있지만, 일정 부분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김록권 KCMS 이사장은 MOU에 대해 "공식적으로 171개국에 2만 7천여 명, 비공식적으로 3만 7천여 명의 선교사의 안전 문제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해외 선교사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에 남아 보내는 선교사 역할을 하는 모든 기관 사역자가 이 사실을 공감하고, 그동안 위기관리에 무방비였던 상황에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위기관리를 할 수 있는 큰 전환점이 되기 바란다"고 밝혔다. 김진대 KCMS 사무총장은 "당장 재단 역량이 강화되진 않겠지만, 공신력을 가지고 향후 해외 건설업체나 기업, 학교, 일반 관광객들을 위해서도 섬길 좋은 기회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교회가 파송한 2만 7천여 선교사의 안전과 위기관리의 모든 책무는 사실상 한국교회에 있다. 한국교계와 선교계가 이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자원과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위기관리 전문가는 "언제까지 정부를 의지할 수는 없다"며 "제2의 아프간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국교회 선교사의 위기관리는 한국교회가 해야 한다는 주님의 엄중한 인도 내지 경고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계기로 한국사회에 모범적인 기독교로 다시 복귀하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진대 사무총장은 "위기를 예방하는 것이 위기관리의 목적이며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그 다음"이라며 "이제 한국교회가 선교운동의 가장 귀중한 자산인 선교 인력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돌보며 전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선교사 위기관리 시스템의 구축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며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각 위치에 있는 이해당사자와 관련자들이 자기의 역할과 영역을 분명히 알고 최대한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선교사, 단기봉사자들은 앞으로 위기관리교육을 철저히 받고 선진 시민의식과 안전관리의식을 갖춰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