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엠마오로 간 글로바(Cleopas)
Cleopas. 골로새 교회 사람들은 세상을 떠난 글로바를 잊을수 없다. 골로새의 은인 글로바. 예수의 작은 아버지, 그러니까 목수요셉의 동생 글로바는 아내 마리아와 함께 노년을 이곳 골로새에서 보냈다. 골로새교회는 사도바울이 직접 세우지 않았음에도 나를 통해 편지를 전달하여 격려할 정도로(저자주-로새서 4장9절) 중요한 교회가 되었고 에바브라와 빌레몬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배출하였다. 그가운데에서도 글로바는 조용한 섬김으로 이 교회를 더욱 든든하게 만들었다.
의사 누가가 예수의 복음서 마지막 장에(저자주–누가복음 24장 13절 이하) 마가와 달리(저자주–마가복음 16장 12절 참조) 글로바의 이름을 넣어준 것이 너무 반갑고 고맙다. 예수의 아버지 요셉이 일찍이 세상을 떠난 뒤, 동생 가정을 말없이 후원하였던 글로바와 마리아. 예수의 직계친척이었지만 교회가 커지는 지난 삼십여 년 동안, 요셉의 이름이 그러하듯, 이상하게도 관심밖으로 사라져가던 이름이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던 날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끝까지 자리를 지킨(저자주-요한복음 19장 25절) 아내 마리아와 달리 글로바는 다음 날인 안식일까지 절망가운데 두문불출하였다. 그 다음날 새벽 예수의 시체가 사라졌다는 여자들의 확인에도 불구하고 그는 허탈한 심정으로 예루살렘 서쪽 10킬로 떨어진 엠마오를 향해 가고 있었다. 오후 햇빛이 서쪽을 향하는 그의 눈을 부시게 할 무렵 부활한 예수가 나타났다. 동행 중 대화하며 저녁을 같이 한 일은 글로바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되었다. 부활하여 자신에게 나타나 성경을 풀어주었던 예수는 더 이상 그의 조카가 아니라 진정으로 신이 된 것이다.
예수를 눈으로 보고 음성을 들었던 한 세대 전 제자들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나같으면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인 기적을 직접 보았다면 예수를 영원히 따라다녔을텐데 하며. 그리고 예수가 사흘만에 부활한다고 살아생전 그토록 예고하였거늘 어쩌면 그렇게 한사람도 믿지 않았던지 의아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글로바가 골로새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수의 행적을 알고 본게 구원을 주는게 아니라고. 엠마오 도상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난 후 비로소 그의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나는 어떠한가. 성령은 내게도 임하였는가. 나는 오늘 마음이 뜨거운가.
31. 라오디게아의 눔바와 재회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가 심해지고 있다. 네로 시절보다 더하다. 황제는 예수의 마지막 남은 직계제자 노사도 요한을 에베소에서 추방하여 에게해 연안 남서편의 밧모섬으로 유배를 보냈다. 강제노역을 마치고 에베소로 돌아온 사도는 놀라운 책을 적어 교회들에 회람을 부탁하였다. 천국과 심판에 대한 예언이 담긴 묵시록. 그 책 앞부분에 에베소 인근의 7개 교회를 직접 지명하며 예수가 전하는 훈계와 예언이 적혀 있다. 에베소로부터 시작한 예언은 라오디게아(Laodicea)에서 멈춘다. 골로새는 거기에 없다.
지난 이십여 년 동안 골로새교회보다 더 커진 라오디게아교회를 실로 오랫만에 찾았다. 골로새 서쪽에 인접한 라오디게아는 에베소로부터 아시아로 가는 주요 통로에 위치한 부유한 상업도시이다. 뜻밖에도 아직 눔바(Nympha)가 같은 집에 살고 있었다. 추억이 방울방울 떠올랐다. 교회 지도자이자 사업가였던 매력적인 여인 눔바. 그녀를 처음 본게 언제던가. 사도바울이 살아생전 나를 통해 골로새로 편지를 보낼 때 그의 지시에 따라 라오디게아에 같은 편지를 전달하던 그날이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당시 모이던 가정교회가 바로 눔바의 집이었다. 추억해보니 나는 당시 라오디게아에 이미 바울이 별도로 보낸 편지 필사본을 그녀에게 받아 골로새에 가져오기도 했다. (저자주–골로새서 4장 15, 16절 참조) 눔바와 나는 그때 정말 열심이었다.
사도요한의 묵시록 세번째 장(저자주–요한계시록 3장 14절 이하)을 읽는 눔바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여전히 고운 그녀가 라오디게아 교회 사정을 얘기하였다. 지금 교회를 진정 어렵게 만드는 것은 황제의 핍박이 아니라 이 도시의 부유함이라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며 차지도 뜨겁지도 않게 신앙생활하는 풍조가 만연하다고. 눈을 치료하는 안약으로 유명한 이 도시를 두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라고 예수가 비유로 명령하는 대목에서는 작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라오디게아를 향한 예언은 이렇게 끝이 난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음성을 듣고 나는 문을 열 수 있을 것인가. 신앙의 길은 아주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던 그녀의 하얀 얼굴이 헤어진 지금도 내눈에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