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벧엘처치(Bethel church)와 호주의 힐송처치(Hillsong church)는 모두 예배음악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교회들이다.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지저스컬처'(Jesus culture) 역시 벧엘처치에서 출발했다. 매년 7월 수만 명이 몰리는 힐송 콘퍼런스는 최근 미국 유명 팝가수의 참석으로 또 한 번 그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물론 이런 것들이 단순히 음악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라면 그 사역의 기반이 교회라는 점이다. '힐송'의 곡들이 널리 알려져 그들을 마치 하나의 밴드나 워십팀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그야말로 착각이다. 한편으론 그들의 음악과 또 이를 포함한 예배가 그 정도로 부각된다는 반증이지만, 어디까지나 그 사역의 토대는 교회다. 다시 말해 현대적 음악을 접목한 예배, 혹은 그런 문화가 곧 그들의 '전(全) 교회적 사역'(교회가 단 하나의 사역만 추구한다는 것이 아닌 특정 사역을 함에 있어 교회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는 의미)인 셈이다.
왜 '로컬'아닌 '파라'처치였나?
이들의 곡들은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벧엘처치의 워십팀이 지난해 처음 내한해 부산 수영로교회(담임 이규현 목사)에서 집회를 갖기도 했었다. 힐송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이 두 교회만이 아니다. 요즘 교회에서 즐겨 부르는 찬양들 중에는 알고 보면 벧엘이나 힐송의 그것처럼 외국의 곡들이 많다. 한국교회의 문화, 그 중에서도 찬양문화의 이면에 이런 해외 교회들의 영향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왜 벧엘이나 힐송과 같은 교회가 없는 것일까. 그런 교회들의 교리와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적 양태에 대한 문제와는 별개로, 현대적 예배음악을 주도하며 그런 문화를 만들어가는 교회 말이다. 규모로만 따진다면 벧엘이나 힐송을 능가하는 교회들도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사실 우리나라의 현대적 예배음악 문화(이를 '경배와 찬양', 혹은 단순히 '워십'이라 부르기도 한다)는 지역교회(local church)가 아닌, 선교단체와 같은 파라처치(Para church)를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예수전도단이나 마커스와 같은 소위 '워십팀'들이 모두 그렇다. 한때 온누리교회(두란노 경배와 찬양)나 제자교회(디사이플스) 등이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었으나 이 역시 전 교회적 사역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점을 찾기는 어렵다.
예배에 대한 '보수적 이해'가 그 원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던 예수전도단이나 마커스의 예배를 두고 굳이 '찬양' 예배라거나 '젊은이' 예배, 심지어 '콘서트'라고 부르는 이들이 여전히 많은 것이 그 단적인 예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거기에 기도와 말씀 등 흔히 떠올리는 예배의 절차들이 모두 들어가 있음에도, 상대적으로 찬양이 많고 그 분위기가 자유롭다는 것 때문에, 그것을 이른바 '전통적인' 예배와 구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차별'까지 하고 있다는 게 일부 사역자들의 지적이다.
국내 한 워십팀의 멤버는 "우리나라 기독교가 서구, 특히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만큼 경배와 찬양 문화도 그렇게 들어왔는데, 당시 보수적 분위기가 강했던 지역교회보다는 주로 선교단체 등 파라처치들이 그것을 받아들였다"며 "그런 흐름들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예배를 정의함에 있어 그 형식이나 절차보다는 의미, 즉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음악은 그것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좋은 도구 가운데 하나"라며 "그러나 한국교회에선 아직 이런 것에 장벽이 존재하고, 때문에 현대적 음악을 활용한 예배나 이를 바탕으로 한 문화가 전 교회적 사역이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로교 아닌 '오순절'이었다면...
한편, 벧엘이나 힐송 등 외국의 교회를 우리와 단순 비교하기 이전에 한국교회의 독특한 상황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바로 한국교회에 다양한 교단이 있지만, 오늘날 이상할 정도로 그 구분이 희미하다는 것. 벧엘이나 힐송처럼 예배음악을 강조하는 외국의 교회들은 주로 은사와 성령을 강조하는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인데 반해, 한국에선 그런 구분 없이 거의 모든 교회들이 마치 유행처럼 그런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CCM 1세대라 불리는 박정관 목사(문화연구원 소금향 원장)는 "힐송 콘퍼런스에 수만 명이 모인다고 하지만 정작 호주 교회들 중에는 그런 것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교회들이 많다. 벧엘처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며 "그런 곳들은 대부분은 비오순절 계통의 복음주의 교회들로, 예배음악에 굉장히 보수적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CCM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해 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그 만큼 서구 교회들 사이에선 교단에 따른 특징이 우리와 다르게 뚜렷하다"고 했다.
외국의 이런 분위기를 본다면, 과거 '경배와 찬양' 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도, 가령 순복음교회와 같은 오순절 측이 그 선두에 있었을 것이라 짐작하기 쉽지만 실제론 그게 아니었다. 박 목사에 따르면, 당시 그것을 주도적으로 받아들인 곳은 의외로 장로교 측이었다. 한국교회 교인들의 교단적 정체성이 외국과는 달랐다는 하나의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벧엘과 힐송 같은 교회가 한국에서 나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게 박 목사의 설명이다. 그는 "만약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이 경배와 찬양 문화를 먼저 받아들였다면 그것을 전 교회적 사역으로 추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장로교회들이 그 선두에 있었고, 또 그들은 단지 젊은이들을 목회하는 차원에서 그것을 제한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그쳤다"고 했다.
민감했던 반응
또 해외의 예배음악들이 한국교회에서 그 저변을 넓혀갔던 것과는 달리 일부에선 그런 음악들을 보급한 교회들의 '은사주의'적 모습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여, 이것이 국내 예배음악 문화의 발전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 힐송이 '이단' 의혹에 휘말리면서 그들의 노래를 듣지도, 부르지도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국내 사역자들 중에도 그 인기가 무색할 만큼 한편에선 그런 논란에 시달렸던 이들이 있다.
한 예배사역자는 "물론 무분별한 수용은 경계해야하지만, 지나친 경직성은 창조적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사역자는 "한국교회는 이 '경배와 찬양' 문화를 오랫동안 새 신자 전도의 수단이나, 교회 내 청년·청소년들의 특수한 문화 정도로 생각해 왔다"며 "교회 성장 내지 유지를 위한 현실적 필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그 전문성이 떨어졌고, 한때 부흥하던 몇 개의 워십팀들마저 근근이 그 명맥만 유지하거나 아예 사라진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