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두건을 머리에 쓸지어다
여자가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 써둔 말이다(저자주–고린도전서 11장 5절). 유대를 포함한 소아시아와 중동지방에서 결혼한 여자는 관습상 머리를 가려야 한다. 훗날 이런 관습이 없는 지역에서는 바울의 권면을 무시하게 될런지는 몰라도, 유대인이기도 한 바울의 이런 말씀은 지금 기독교회의 혼란을 반증하고 있다.
기독교가 유대를 벗어나 세계종교가 되면서 일어난 혼란은 그뿐이 아니다. 예배는 언제 드려야 하는가. 많은 지역에서 여전히 유대인의 안식일 그러니까 한주의 마지막날에 모여 예배한다.
그런가 하면, 예수가 부활한 안식일 다음 날에 모여야 한다는 이도 많다. 어느 것이 맞다고 정해줄 권위자도 없다. 예배에서는 무엇을 하는가. 예수는 새로운 믿음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남기었으나 예배의 형식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찬식 이외에는 별도의 지시를 남기지 않았다. 유대교의 엄격한 유월절 율법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예수의 언행에 대한 기억때문인지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성향이 커져 가고 있다. 회당에 모이지 않고 몇몇 가정에 모여 성경을 회람하고 지도자가 강독하고 기도한 뒤, 함께 식사를 하는 방식으로 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바울의 고린도서신에는 이 공동식사에 이미 빈부의 차이가 드러나 있고 술에 취한채 성찬식에 참여한 모습에 대한 지적도 보인다(저자주–고린도전서 11장 21절).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에 충만하여 전도한 초기 시절, 따르는 이들은 소유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들은 예수가 그들의 생전에 구름을 타고 이 땅에 재림할 것으로 굳게 믿었다. 그러나 한세대가 지나자 열정과 기대가 사라지고, 이제는 예수가 말했던 재림은 성령의 강림을 말한 것이라는 해석이 조용히 힘을 얻어간다. 기독교회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교회가 커지면서 순수한 신앙공동체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구원받은 인간은 여전히 이기적이고 불완전하며 교회안에는 구원받지 못한 이들도 가득하다. 바울의 조심스런 권면에서 신앙의 자유를 만끽하는 성도들에 대한 유대출신 랍비의 본능적인 불안감이 느껴지는 건 내 괜한 생각일까.
19. 수헤나 가족을 잃고서
수헤나 가족은 아시아 동쪽지방 출신이었다. 그들은 로마의 도시 골로새로 이민을 오면서 생애 처음으로 예수의 복음을 들었고, 곧 세례를 받은뒤 가정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문제는 그녀의 어린아들 예리코로부터 발생했다. 예리코는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다. 예리코는 부모가 가정교회내 또래 아이들이 있는 몇몇 가정과 식사와 교제를 할 때마다 아이들과 계속 갈등을 빚었다. 수헤나는 무난한 성격이었으나 아이의 사기를 꺽지 않는 데에는 마음을 크게 두는 엄마였다. 어느날 예리코와 한 또래 아이는 서로 간에 장난감을 빌려준 것인지 훔친 것인지를 두고 크게 다투었다. 수헤나는 억울해 하는 예리코를 데리고 그 아이의 엄마에게 서운함을 표시한 뒤 교회를 떠나갔다. 아이들의 텃세도 있었겠지만 객관적으로 예리코가 조금 문제가 있어 보였다. 다른 몇 가정이 예리코와 아이들 간의 비슷한 갈등을 전하였고, 그 결과 수헤나 가족을 붙잡거나 갈등을 봉합할 노력없이 시간이 흘렀고 수헤나 가족은 신앙에서 멀어져 갔다.
아이들 간의 사소한 문제로 막 신앙에 접어든 저들을 잃은 이 일이 시간이 지나도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더 잘할 수는 없었을까. 예수가 사역초기 산상에서 남긴 얘기를 사도베드로에게 들은 적이 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예수가 제자에게 바라는 삶의 수준은 인간의 자연스런 성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만약 예리코와 수헤나를 사랑하기 위해 저들을 용납했다면 그 상대방이었던 다른 가정과 아이에게는 억울한 일이 되었을 수도 있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이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굉장히 어리석은 일로 보이기도 한다. 이민자로서 정착에 열심이던 수헤나 가족의 평안을 위해 기도한다. 그 가정을 다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