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최고신은 유피테르다. 로마의 중심 카피톨리노 언덕에는 유피테르 신전이 세워져 있고, 씨저 이래로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들은 티투스 개선문에서 시작한 행진을 유피테르신전 앞에서 끝내고 있다. 피정복자에 대한 관용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로마의 전통은 수많은 타민족의 신을 받아들여 왔지만 최고의 신은 역시 유피테르이다.
그리스가 지중해의 주인이던 시절, 그들은 제우스를 최고라 하였다. 올림푸스의 수많은 신들의 아버지이기도 한 제우스는, 예술을 사랑하던 그리스인들의 성품을 닮아서인지, 어딘지 조금 엉뚱하고 허술하며 인간적이다. 로마는 매우 규율이 잡힌 나라이지만 그리스의 예술과 신앙을 흠모하여 신들의 이름을 로마식으로 바꿔가며 계승하고 있다.
(저자주 – 훗날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던 서기 393년, 유피테르와 관련된 두가지 조치가 취해진다. 로마의 신의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를 앉히고 유피테르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것과, 그리스 시절엔 제우스에게 로마에선 유피테르 신에게 바쳐진 운동 경기 대회인 올림픽을 완전히 폐지하기로 결정한 법률이다. 그러니 서양 역사에서 393년은 그리스로마 문명이 공식적으로 끝난 해가 된다.)
문명이 최초로 시작된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바알을 최고신으로 삼았다. 두 강 사이의 비옥한 땅에서 농사짓는 이들의 신이었던 바알은 그리하여 풍요와 향락의 신이었다. 목축으로 광야를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할 때에 그들을 매혹시킨 것은, 엄격한 창조주 여호와가 아니라, 북쪽 풍요한 땅의 바알신이었던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 스스로가 안팎으로 보잘 것 없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선택하고선 그들의 끊임없는 바알에 대한 관심에 매번 분노하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며 의아해한 적이 여러 번이다.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낸 여호와는 어쩌면 이제야 인간이 신을 인식하는 방식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아닐까.
로마인에게 예수를 전하면서 유일신 여호와를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여호와는 형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지중해와 근동에서는 늘 신의 형상을 만들어 섬겨 왔다. 신의 모습이 없는 유대의 신앙이 저들의 경계를 넘어 로마제국 전체에서 비로소 새로운 신앙으로 받아지는 이유는 이제야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경배의 대상 예수가 손과 눈에 잡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