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포로로마노

콜롯세움에 비치는 석양빛을 받은 바울의 얼굴이 종종 떠오른다. 예루살렘에서 포송되어 가이사르의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백부장과 천부장에게 복음을 전하던 그이. 제국의 변방에서 이미 흘러와 일부 유대이민자들 사이에 주목받던 청년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포로로마노의 빛나는 건축물과 자긍심 높은 로마시민들 사이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나 기이하게 퍼져나간 인간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

이스라엘의 신이 있다 하여도 어쩌면 그리 찌질한 민족을 골라 신을 자처했는가 나무라며 이제 어찌하여 모든 민족과 로마의 유일신이 되고자 하는가 공박하던 한 집정관의 지적에, 흔들림없이 자신이 보고온 하늘과 신의 뜻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예수의 죽음을 논증하던 바울의 그 확신에 찼던 얼굴. 이 어리석은 구원의 도는 따르기로 한 지금도 나를 갈등하게 하지만, 날것 그대로의 바울은 참으로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바울의 힘이었는지 하나님의 뜻이었는지 아직도 알 수 없다.

13. 겨울비

항상 기뻐하라고 권하는 말이 있음은,
항상 기뻐할 수만은 없기 때문일 터이다.
든든한 가족과 벗이 곁에 있음에도
삶의 무게에 마음 한켠 쓸쓸해지곤 한다.
구원이 내게 영원한 기쁨을 준다는 당위보다
동산에 올라 외로움을 고백하던 인간 예수를 바라본다.
내리는 슬픔을 너무 곱씹지도 애써 외면하지도 않으리.
겨울비가 차분하게 지붕을 때린다.

14.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로마는 참으로 법의 나라이다. 12편의 소제목아래 총 113조로 구성된 소위 12표법(저자주 – 로마 최초의 성문법, THE LAWS OF THE TWELVE TABLES)을 봐도 그렇다. 예수가 오기전 450년이나 전에 만들어진 12표법이 아직도 적용되고 있지 않은가. 내용도 구체적이다. 제6편 10조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권리를 전제한 가운데, 남편은 이혼을 원할 경우 반드시 여자에게 이유를 제시하도록 규정한다. 제8편에는 건물과 부동산에 대한 규정을 해두었는데, 1조는 빌딩을 지을 때 건물과 건물사이에 최소한 2.5 pes(저자주 – 로마제국에서 거리를 재는 도량형으로 pes는 현재 영미국가의 foot과 비슷하다. 1 pes 는 약 30센치미터) 간격을 두도록 하고 있다.

로마의 정갈하고 멋진 건물들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다. 제10편에는 종교의식에 대해 규정하는데, 14조에서는 장례식은 한사람에 대해 오직 한 번만 허용하며, 관도 여러 개를 만들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다. 부유층 사이에 사치를 막기 위한 법조항이다.

이러니 로마시민권을 모두 얻으려 한다. 일단 부부 중 일방이라도 시민이면 그 사이에 난 자녀는 자동으로 로마 시민권을 얻는다. 놀랍게도 해방노예의 자녀에게 시민권을 준다. 시민이 아닌자도 군대에서 복역하고 나면 시민권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돈으로 사는 길도 있다. 물론 굉장히 높은 가격에.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때 예수가 보여준 동전에 로마의 세번째 가이사 티베리우스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를 다른 때가 아닌 로마 식민지 치하의 이스라엘에 보낸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의 때를 따져 보니 로마에서 12표법이 만들어진 때와 비슷하다. 그렇게도 오랜 기간을 침묵하던 신이 왜 우리세대에 아들을 보냈을까. 사도들이 로마의 창끝에 순교하고 있다. 그런데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가 건설한 그 길을 타고 예수의 소식이 세상 끝까지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