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해방노예
어찌 잊으랴. 조부로부터 내려오던 내 노예신분이 해방된 그 날을. 그리고 그 일을 생각하면 나는 바울의 선한 배려를 또한 감사하지 않을수 없다.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자신을 돕던 나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며 건넨 편지가 나를 그리 만든 것이니.(저자주 – 바울이 오네시모 인편에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가 신약성경 빌레몬서이다. 빌레몬서 1장16~18.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빌레몬은 나의 절도를 묵인하기까지한 예외적으로 선한 주인이었지만, 나는 그에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로마에서의 삶이 좋았다. 골로새와 달리 제국의 수도 로마는 노예들의 지위가 매우 높고 그 숫자도 매우 많다. 수도 로마의 문화적인 역량은 상당부분 그리스출신 노예들의 예술, 의술, 행정능력에 기대어 있다. 재정관리나 자녀교육도 노예들이 주로 담당한다. 특히 로마시내 부자집 노예는 평범한 자유인보다 생활이 나을 정도이니.
노예 스파르타쿠스가 예수가 이 세상에 오기 전 70여 년 전 로마제국 전역을 누비며 해방전쟁으로 나라를 쑥대밭을 만든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는지라, 당국은 노예의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대도시에서는 특히 겉모습으로는 노예라는 신분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원로원에서 노예들에게 별도의 복장을 입히는 것에 대해 법안이 올라갔다가 부결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오히려 얼마나 노예의 숫자가 많은지를 깨닫게 해서 세력화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노예들이 교회로 몰려들고 있다. 예수의 가르침은 누구보다 노예들에게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8. IN DUBIO PRO REO
인 두비오 프로 레오. 예수를 못박아달라는 바리새인들의 고소에 빌라도는 그렇게 답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저들이 대는 증거는 일관되지 않았으니. 범죄여부가 입증되지 않는 피고인 예수를 풀어주라는 로마법의 대명령을 따른 것이니 예수를 죽인 것은 로마법정이 아니다. 빌라도가 필요이상으로 비난받고 있다.
빌레몬은 그의 귀한 물건을 훔친 이가 나임을 알고 있었다. 그의 심복들이 나를 기소한 법정에서 빌레몬은 증인을 내세워 나를 소아시아의 악명 높은 감옥에 갇히게 할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인 두비오 프로 레오. 천부장이 말했고 나는 풀려나 로마로 갔다.
바울의 복음전도가 아시아에서 신상을 만들어 팔던 이들의 사업에까지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이를 갈던 그들은 예수를 죽였던 똑같은 방식으로 바울을 죽이려 하였다. 바울은 로마시민이었다. 인 두비오 프로 레오. 변호사 더둘로의 고소에 바울은 벨릭스 총독에게 항변했다.
가이사에게 상소재판을 받기 위해 바울이 로마에 왔으니, 내 운명을 연결한 이 법률 용어를 어찌 잊을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