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이 4월 '장애인의 달'을 맞아, 보행 약자 중 가장 취약한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지도 안내서 「오늘 이 길, 맑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지하철 여행기」를 발간했다.

 

미호출판사를 통해 발행된 이 책에는 수도권 20개의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휠체어나 유모차로 이동 가능한 길을 안내하는 지도가 게재돼 있으며, 경사도가 비교적 낮고 바닥이 고른 길, 문턱이 없거나 경사로가 설치된 가게들, 엘리베이터와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곳들을 소개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은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2010년부터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장애 체험' 활동을 시작했으며, 2012년부터는 '특별한 지도 그리기 서포터즈'를 운영해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휠체어 장애인이 다닐 수 있는 길을 안내하는 지도를 그리고 있다. 2010년 8명으로 시작해 현재는 16명의 청년(대학생·직장인)과 장애인이 함께하고 있다.

장애 체험과 지도 그리기 활동 모습. ⓒ밀알복지재단 제공
장애 체험과 지도 그리기 활동 모습. ⓒ밀알복지재단 제공

특히 2010년부터 자원봉사자로 이 프로젝트를 함께해 온 정지영 작가가 글을 썼고, 인세 전액을 밀알복지재단 장애 인식 개선 사업을 위해 기부했다.

정지영 작가는 "장애 체험을 하는 내내 힘들고 두렵고 부끄러웠고, 모든 길은 낭떠러지 같았다. 그런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부담스러웠다"며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한 휠체어와의 만남에 놀란 표정을 지었고, 플랫폼에는 휠체어 그림이 새겨져 있었지만 누구도 진짜 휠체어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고 전했다. 그는 "책을 발간한 이유는, 휠체어를 타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모든 것이 불공평한 그들을 배려할 준비를 하자고 독려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도 그리기에 동참한 봉사자는 "장애인에게 외출은 마치 장애물 경기 같다"며 "궁극적으로 지도 그리기 활동은 '장애인에게 장애되지 않는 사회 환경 만들기'에 나서야 함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2014년 10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게서 장애인의 교통·건축물 접근권을 강화할 것을 권고받은 바 있다. 시각장애인 유도 안내를 위한 접근로 점자블록 설치율은 31.6%에 불과하고, 전국 공중시설 내 장애인 화장실 설치율도 38%로 조사됐다.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환경으로 인해, 장애인들의 문화활동은 'TV 및 비디오 시청(96%)'이 압도적이다. 문화예술을 관람하는 장애인은 7%에 불과하며, 45%는 집 바깥 활동 시 불편을 호소했다. 주된 이유는 편의시설 부재(47%)와 외출 시 동반자 부재(29%), 사람들의 시선(11%) 때문이다(2014 장애인 실태 조사).

2014년부터 이 활동에 동참해온 유경재 씨(지체장애 1급, 29세)는 "계단 하나가 절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며 "군대에서 부상을 당해 하반신이 마비됐는데, 휠체어를 타고 처음 외출하던 날을 기억한다. 너무 고생을 해서 다시는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고 전했다.

밀알복지재단 나눔대사로 활동 중인 배우 류수영은 책을 본 후 "얕은 계단도, 인도와 차도의 경계석도, 정류장의 도로 턱도, 길 위의 보행 약자에게는 큰 벽"이라며 "길 위에서 아무도 차별받지 않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책이 작은 변화의 불씨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진태현·박시은 부부 홍보대사는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추천 장소들 중에 예쁘고, 의미 있는 곳이 많아, 가 보고 싶은 마음에 하나하나 표시도 해 두었다"며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판매 중인 이 특별한 지도책에는 '지도만 담은 포켓북'이 부록으로 들어 있어, 갖고 다니며 편하게 볼 수 있다. 따뜻한 마음으로 선행을 실천한 이들의 이야기도 짧게 소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