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란 무엇인가
알리스터 맥그래스 | IVP | 152쪽
부활절이 지났다. 고난주간과 부활절 동안 읽으려 했던 책 중, 겨우 한 권을 끝내고 말았다.
부활절 설교 때도 초반에 언급했지만,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사역자로 십여 년간 보내면서 주일학교부터 본당에까지 다양한 무덤을 만들어 보았다. 십자가도 그랬다. 주일학교 아이들에게는 설교 도구로서만이 아니라 체험하는 역할로 십자가와 무덤을 설치했고, 장년 성도들을 위해서도 고난주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으셨던 고난의 흔적을 묵상하도록 돕기 위해 상당한 크기의 무덤과 십자가를 만들어 본당에 설치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무덤을 만들 때마다 매번 신경 쓴 것은 무덤 문이 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 닫힌 무덤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2,000년 전의 처형도구나 고난의 의미로만 이해된다면, 십자가는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아니 소망 없는 상징이다.
세상의 변혁을 꿈꾸는 혁명가들이-그것의 옳고 그름은 일단 떠나더라도-자신의 목숨까지 던지는 일 자체는 숭고할지 모르지만, 그 목적이 잘못되거나 헛된 것에 목숨을 던진다면 또는 그것을 이루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하는 것에 그친다면, 그것만큼 허망한 일이 있을까?
만일 십자가가 우리에게 그런 의미로 다가온다면 그것만큼 허망한 일은 없을 것이고, 그 길을 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큼 쓸모없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십자가 신앙은 그것을 넘어선다. 죽음을 넘어 새 소망과 생명의 길을 보여 준다. 「십자가란 무엇인가」를 통해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십자가 신앙이 갖는 의미를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보여 준다.
세상은 '십자가'를 기독교가 믿는 신앙일 뿐으로 치부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저 성인의 고난과 희생 정도로만 여긴다. 또 어떤 신학자는 부활이 실제 일어났건 아니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한다. 우리가 믿는 신앙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알리스터 맥그래스가 말하듯,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신앙은 무너진다. 그러기에 그 십자가는 실제여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실제여야 한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열을 토하며 말했듯,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저자도 책의 초반에서 십자가 신앙을 통해 표현되는 부활은 실제로 일어난 일임을 입증하고, 그 부활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를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신앙은 주관적 확신과는 다름을 보여 준다. 주관적 확신은 실제 우리의 상황과 다를 수 있다. 독약을 만병통치약이라고 내가 믿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긍정의 신학'이 문제가 있는 것은 종종 그 흐름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긍정이 아니라, 자기 주관적 또는 자기 욕망적 긍정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아니다. 우리의 믿음은 실제적 확신이고 절대적 확신이다. 십자가 신앙은 그런 힘과 확신이다.
부활절은 지나갔다. 많은 교회에서 특별 새벽기도도 하고 행사도 가졌다. 하지만 부활절이 지난 지금, 이미 적지 않은 이들에게서 그 부활이 갖는 의미는 잊힌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부활은 부활절에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 전체를 온전히 지배하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 중심이 되어야 한다. 부활 신앙이 있다면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부활 신앙을 갖고 있다면, 나의 삶의 태도는 변화되어야 한다.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십자가란 무엇인가」를, 부활절이 이미 지나갔음에도 읽어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양호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