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요셉, 오 가여운 남자여. 동침하지 않은 아내의 임신소식을 듣고도 그를 보호해야 한 남자. 죽음의 위협은 아들의 출생 후 몇 년 그를 늘 따라다녔다. 유월절을 마치고 어린 예수가 성전에 홀로 남은 날 자신을 따라오지 않은 것을 책망하자, 아버지 집에 내가 있지 어디 있을 줄 알았느냐는 이 세상 말 같지 않은 대답을 들어야 했던 서글픈 아버지.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이게 전부라서 죽은 날은 커녕 죽은 해마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신의 아들을 품어야 했기에 인간 아버지의 흔적은 일부러라도 지워야 했을까. 예수의 공생애 기간 동안 마리아가 과부였으니 그는 분명 일찍 세상을 떴을 것이겠지만. 나무를 재단하는 그의 재주를 물려받은 아들 예수가 나무에 달려 피를 흘려야 했으니 이는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마리아와의 사이에 훗날 사도가 되는 야고보를 포함하여 적어도 6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 예수가 첫 아이였으니 동생들은 예수가 하늘로 돌아갈 때 모두 30을 넘지 않은 청년들이었을 터. 그러나 이 육신의 자녀들마저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라 조카였을 것이란 얘기를 들어야 하는 슬픈 아버지.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서 친동생들을 두고 비슷한 또래의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맡기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그럴듯한 설명과 함께.

그의 육신의 자녀들은 예수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종종 예수는 가족을 심하게 무시하는 듣기에 민망한 가르침을 남기곤 했다. 사랑하라는 이웃 중 가장 큰 것이 가족일텐데도.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요셉의 자녀들이 형이자 오빠였던 예수를 신의 아들로 깨달은 것은 십자가를 지난 뒤어야 했다.

가여운 목수 요셉은 그리하여 구원받았을까. 제발 그러하길. 그가 신이 부여한 역할을 무리없이 수행하였기에 주어진 것인지, 아내와 가족을 보호한 의로움 때문인지, 이스라엘의 율법을 성실히 지켰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들 예수를 신의 아들로 믿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