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지인이 내게 '어느 아들이 아버지께서 쓴 편지'라는 글을 보내 왔다. 왠지 호기심이 생겨 읽으니 내용은 이러하다.

▲전태규 목사(한양대 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 세계복음화중앙협의회 대표회장)
(Photo : ) ▲전태규 목사(한양대 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 세계복음화중앙협의회 대표회장)

"아버지, 세상에는 온통 어머니만 있고 아버지는 없는 듯합니다. 아들이고 딸이고 다들 '세상에서 우리 엄마만큼 고생한 사람 없다'며 '우리 엄마, 우리 엄마' 합니다.

아버지, 당신은 무얼 하셨습니까?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느라 묵묵히 집안의 울타리가 되고 담이 되고, 새벽같이 일터로 나가 더우나 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윗사람 눈치 보며 아랫사람에게 밀리면서, 오로지 여우 같은 마누라 토끼 같은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는 일에 일신을 다 바쳐 오지 않으셨나요?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마냥 흐뭇하고, 여우 같은 마누라 곱게 치장시키는 재미에, 내 한 몸 부서지는 것은 생각 않고 열심히 일만 하며 살아 오지 않으셨나요. 예전엔 그래도 월급날 되면 돈 봉투라도 마누라 앞에 턱 놓으며 폼이라도 잡고 위세를 떨었건만, 나중엔 그나마 통장으로 깡그리 입금되어 죽자고 일만 했지 돈은 구경도 못 해 보고, 마누라에게 갖은 애교 떨며 용돈 받아 사셨습니다.

세탁기에서 꼬인 빨래 꺼내는 일도, 청소기를 돌리는 일도, 애들 씻기는 일도, 분리수거하는 날 맞춰 쓰레기 버리는 일도, 다 아버지 당신의 몫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 참 불쌍합니다. 결혼하고 당신을 위해선 돈도 시간도 투자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처럼 화장을 하거나 옷을 사치스럽게 사 입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일터만 오가십니다. 그러다 어느 날 정년퇴직하고 집만 지키는 아버지를 어머니는 삼식이라며 힘들어하고, 딸들은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여행도 다니시라고 하지만, 나가면 조금의 돈이라도 낭비할까 봐 그저 집이나 동네에서 맴도는 아버지. 여행도 노는 것도 젊어서 해 봤어야지요. 집 나와 봐야 갈 곳도 없어 공원만 어슬렁거립니다.

차라리 눈칫밥이지만 마누라가 주는 밥 먹고 집에 들어 앉아있는 것이 마음이 편합니다. 시대의 흐름이라지만 마음이 아픕니다.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이여! 이제라도 당신을 위해 사십시오."

나는 이 글을 읽고 문득 하늘나라에 가신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경찰공무원에서 목회자가 되어, 남다른 많은 재능을 가지셨지만 한평생을 농촌 목회의 길을 가시면서 많은 고생을 하신 것을 보아 왔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무척 힘이 세다고 착각하였다. 그러나 장성한 후에 보니 아버지는 나보다 힘이 더 없었다. 나 또한 아직까지는 활동하고 있지만, 지나 온 세월에 비하면 남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함을 잘 알고 있다.

두 아들이 해외 선교사로 나가, 우리 부부는 늘 자식들 있는 곳에 마음이 간다. 그래서 오래 전에 내가 속한 단체의 수련회를 아들이 선교사로 사역하는 코타키나발루로 정하였다. 그리고 지난해 6월은 세계복음화중앙협의회, 8월은 영성부흥동문, 11월은 한양대목회자협의회 세 단체가 계획한 대로 행사를 은혜 가운데 마치고 돌아왔다. 아마 내 생전에 전무후무한 일일지도 모른다.

김요셉 목사가 쓴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남는다'라는 책에서는, 가르침에 대해 "무엇을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칠판에 적어 주는 것보다, 삶으로 고스란히 보여 주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의 영혼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고 하였다.

얼마 전 신학교 동창 고신일 감독에게 사진을 보내면서, 한번 가서 우리 아들 선교사를 격려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자식이 뭐라고, 지난해 나는 세 번이나 다녀 왔다고, 다른 곳 가는 것을 아껴 두었다 아들 있는 곳으로 간다고 하였다. 이 어찌 된 일인가!   

그는 내게 "대단하시네~" "아버지의 힘이네요"라는 문자를 보내 왔다. 나는 그 말이 지나가는 말로 들리지 않고 아주 기분 좋게 들렸다. 아무리 늙어가는 몸일지라도 아직은 힘이 남아 있다 생각하니 엔돌핀이 솟아났다. 요즘 백세인생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나 아직은 힘이 있다고 전해라~"

어머님의 내면에 숨은 힘을 어찌 부인하랴. 그러나 오늘 나를 비롯한 많은 아버지들이 예전보다는 힘을 잃어가는 것 또한 부인 못할 것이다. 우리 모두 아버지의 기를 살려 드리자. 아버지가 살아나야 내가 살고, 또한 가정도 행복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 건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아버지의 힘이네요." 나는 이 말을 오래토록 듣고 싶다.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 될까 왠지 걱정은 되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