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자녀를 둔 부모나, 자녀가 성장하여 성인된 부모는 십대 자녀를 사랑하고 잘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한국의 경우 청소년이 무서워서 피한다고 한다. 어떤 청소년은 교사와 동급생을 폭행하고, 살인까지 범하고, 성관계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하고, 마약도 복용하고, 경찰서 신세를 지기도 한다. 한인타운 내에선 이와 같이 큰 실수를 범하지 않더라도 장래에 큰 소망이 없어서 빌빌하는 학생, 공부에 재미를 느끼지 못해 하루하루를 지루하게 사는 학생, 게임에 중독되어 있는 학생, 부모와 자주 다투거나 아예 대화를 단절한 학생, 우루루 몰려다니며 방황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청소년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또 십대 자녀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이런 모습을 목격할 때 마음이 많이 아프다.
이런 청소년을 키우는 부모, 특히 문제가 심각하거나 부모와 마찰이 심한 십대 자녀를 둔 부모는, “내가 우리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는 건가? 내가 부모로서 무슨 실수를 범한 건 아닌가?”라고 근심다. 이런 질문은 분명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기에 던지는 것이고, 모든 부모가 궁금해 하는 것이다. 독자 중 이런 생각이 든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십대 자녀를 잘 키우고 싶다면 우선 청소년에 대해 좀더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들의 현 주소를 찾아보는 게 현명하겠다. 시대와 문화, 언어와 인종을 초월해 십대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첫째,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싶어한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십대 자녀는 어렸을 때와 같이 부모의 말을 잘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부모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표현한다. 개리 채프만 박사는 그 이유가 산업화(industrialization)라고 말한다. 농업이 주업이었던 1800년대와 달리, 산업혁명으로 인해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 집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고, 돈을 벌며 독립하던 십대의 삶이 19세기 말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특히, 1940년대부터 전기와 에너지, 그리고 자동차와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컴퓨터 같은 기기로 인해 사회와 생활의 기반이 급히 변했고, 미국의 경우 청소년은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하고 홀로서기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둘째, 독립심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의 아이덴티티, 즉 정체성이다. 청소년은 자신의 정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탐구하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저 누구의 자녀, 누구의 형, 동생인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장래에, 변화하는 사회 가운데 나의 위치와 정체는 무엇인가? 청소년은 이러한 질문을 갖고 있기에 혼란스러워 하며 불안해 한다.
이 두 가지, 독립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은 모든 청소년의 욕망이요 과제라 할 수 있다. 독자들도 자신이 청소년이었을 때를 상기해보기 바란다. 분명 방금 설명한 독립심과 정체성을 자신도 경험했음을 인정할 것이다. 부모로부터 거리를 두며 자신들만의 음악, 춤, 복장, 문화 등을 추구하는 십대. 이들을 잘 이해해야지만 부모가 낙심치 않고 위기를 잘 극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