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은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어 21세기에 이르면서 급성장한 분야입니다. 학문적으로도 환경보호를 위한 다양한 방법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환경을 보호하자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더구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아름다움을 지켜나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나 이웃 앞에서 얼마나 합당하고 아름다운 일입니까?
이러한 환경보호운동에도 성경적인 방법과 세속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장 아름다운 목적에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과 그렇지 못한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방법이요, 다수의 세속적인 방법입니다.
환경 문제에 관한 대표적인 세 가지의 패러다임은 인간중심주의, 신중심주의, 그리고 생태중심주의입니다. 서구사회는 지난 수백 년 동안 모든 피조물을 인간중심주의(人間中心主義, anthropo-centrism)로 보았습니다. 인간중심주의란 피조물을 오직 사람의 용도 중심으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효용으로 피조물을 취급하다 보니 문명의 발전과 아울러 오염의 확산, 피조물의 훼손, 재생 불가능한 생물의 멸종, 그리고 결국은 인간의 삶의 질의 하락이 생겨났습니다.
인간중심으로 자연을 훼손한 것은 탕자의 탐욕스런 방법이요, 옳은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생태중심주의를 취하는 것도 주님의 방법은 아닙니다. 생태중심주의(生態中心主義, eco-centrism)는 피조물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피조물을 중심으로 삶의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연과의 합일을 주장하면서 개발을 금지하는 동양사상이나 불교사상과 일맥상통합니다. 광야와 사막의 현상유지, 개발의 철폐, 그리고 자연의 입장에서 자연을 보호하자는 관점입니다.
이들은 농업을 자연에 대한 식민화의 행동으로 봅니다. 뉴멕시코주의 환경주의자인 에드워드 애비(Edward Abbey)는 “모든 창조물은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며, “인간중심적인 사고는 생물중심주의로 바뀌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입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윤리학과장인 피터 싱어(Peter Singer)도 급진적인 동물 보호주의자인데 그도 모든 만물이 동등하다고 강조합니다.
앞의 두 입장은 하나님 없는 탕자문명의 주장입니다. 환경문제에 있어서 사람이나 자연이 우상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환경문제에 관한한, 신중심주의(神中心主義, theo-centrism)에 서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다스리라고 했습니다(창 1:26-28). 이 다스림은 훼손이 아니라, 에덴동산을 “경작하여 지키라”(창 2:15)는 청지기의 사명입니다. 신중심주의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친 탕자의 길이 아니라 환경관리자, 환경청지기의 중용의 길을 보여줍니다. 환경의 지킴에도 탕자의 방법과 주님의 방법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