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교회의 역사는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지만, 동시에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그 시대의 역사를 창조적으로 이끌어 나갔던 위대한 인물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역사 기록인 사도행전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신약성경 가운데 유일한 역사 문서인 사도행전(The Acts of the Apostles)은, 책 제목 그대로 예수께서 승천하신 뒤 사도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하는 과정이 들어 있다.
사도행전의 시작 부분은 베드로에 의해 주도되지만, 후반부의 중심 인물은 사도 바울이다. 베드로는 예수께 직접 부름을 받은 제자단의 대표자였다. 반면 바울은 아무런 배경 없이 사도행전의 주역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역할은 베드로보다 더 중요하고 뛰어난 것이었다. 바울을 빼 놓고는 사도행전과 초대교회 역사를 생각할 수가 없을 정도로, 그의 존재와 가치는 절대적이다. 그것은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께 특별하게 선택된 인물임을 보여 준다.
바울의 위대한 생애는 무엇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일까? 그는 위대한 인물이 될 요소를 갖고 태어난 것일까? 물론 그는 다른 사람들에서 찾아 보기 힘든 훌륭한 자질과 배경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정통 신앙의 유대인으로서, 당시 최고 학자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철저하게 유대교 랍비 교육을 받았으며, 모든 일에 앞장서는 신앙적 열정마저 지니고 있었다(빌 3:5-6). 그러나 그런 자질과 배경들이 바울에게 나름대로의 도움을 주었겠지만, 그를 위대하게 만든 결정적 요소는 아니었다.
그러면 바울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신비한 능력이라도 지니고 있었던 것인가? 사도행전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바울은 전도 여행에서 놀라운 승리를 거두기도 하였지만 더 많은 경우 박해의 어려움을 겪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자신이 당했던 어려움을 이렇게 요약한 적도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 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바울은 만능의 소유자이기보다는, 오히려 가는 곳마다 무수한 위협과 어려움을 겪은 인물이었다. 그는 극심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승리를 보여 준 인물이다.
그러면 과연 무엇이 그를 초대교회의 위대한 인물이자 사도행전의 주역이 되게 한 것일까? 바울의 전도활동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은, 그의 승리하는 삶의 요인으로 다음 세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첫째로,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경험이다. 그것은 단순한 일상경험이 아니라, 그의 전체 생애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 놓은 중생의 위대한 영적 경험이었다. 중생은 새로 태어나는 창조의 경험인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체계가 완전히 새롭게 뒤바뀌는 전인적 변화이다. 지금까지는 자신을 중심으로 살았다면, 중생 이후에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는 새로운 변화다. 바울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에서 두 차례나 자신의 다메섹 경험을 간증하고 있다(행 22:5-21; 26:9-18). 그것은 그동안 그를 지탱해 주었던 힘의 원천이 다메섹 도상에서 경험하였던 중생이었음을 말해 준다.
둘째로, 생명보다 더 소중한 하나님의 사명이다. 3차 전도여행을 마치면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밀레도에서 만난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고백하였다. 새 생명은 곧 사명을 향한 삶이다. 그 사명은 자신의 생명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것이다. 자기 생명의 가치를 하나님께 받은 사명 아래에 두는 것, 그것이 바울의 열정이었으며 그의 삶을 떠받쳐 주었던 또 다른 기둥이었다.
마지막으로, 바울을 이끌며 지탱시켜준 힘은 그의 주변 동역자들이다. 실라, 디모데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은 언제나 그의 주변에서 기쁨과 슬픔, 승리와 좌절을 함께 나누며 서로에게 큰 힘이 되었던 사역 동반자들이다. 그는 독단으로 일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동역자들과 연합하는 공동체의 힘으로, 사명과 사역의 길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바울은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모든 자'에는 직간접으로 그를 도왔던 동역자들이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딤후 4:7-8). 그런 바울이 "네가 올 때 마가를 데려 오라"고 부탁하면서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고 한 것도, 그에게 동역의 힘이 얼마나 중요하였는가를 보여 주는 내용이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해당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