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우리를 죄인으로 취급할 때에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모든 사람들을 죄인으로 여겨야한다고 가르칩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명제는 기독교의 역설이기도 합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우리가 서로를 죄인으로 볼 때에 얻는 유익에 대하여 "목회자의 영성"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을 위한 책입니다만 여러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옮겨봅니다.
<누구를 죄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의 태도나 도덕성에 대한 일격(一擊)이 아니다. 그 사람에게 용서와 은혜가 가장 중요하다는 신학적 믿음이다. 목사가 사람들을 자기와 같은 죄인으로 엄밀하게 정의한다면, 슬픔과 결점, 고통과 실패를 그들과 나누려 할 것이고, 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작용하는 표시를 지켜볼 시간이 많을 것이다.
사람을 죄인으로 이해하면 분노 없이 목회할 수 있다. 사람들이 죄인이라면, 목사들은 앉아서 사람들이 나쁘다며 슬퍼하는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 그들에게 왔다. 목회의 대화와 설교의 주요 주제는 은혜이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로마서 5:20)
사람들은 죄를 '자신을 특징짓는 총체적인 사실'로 대하지 않는다. 또 그에 대한 효과적인 처방으로 용서를 바라지도 않는다. 은혜는 지나쳐버리고, 스스로 (의로운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목사는 거기에 굴복하면 안된다. 그 길을 막아야 한다. 사람을 죄인으로 이해하지 않는 순간, 목회 사역이 헌신한 하나님의 말씀은 멀어진다.
죄는 하나님의 뜻에서 개인이 이탈한 것이다. 죄는 하나님에 대한 의존과 이웃 간의 상호의존을 부인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거부하고 개인의 자아를 신처럼 취급해달라고 (하나님께) 맞서서 강조하는 행위이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님들이 교인들을 일방적으로 죄인취급해야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목사님들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을 죄인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저 사람, 왜 저래?"하는 대신에, "우리가 모두 죄인들이니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래서 내게 해를 끼친 사람들을 용서해줄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는 늘 죄와 싸워야합니다. 죄를 범했을 때에는 신속하게 회개하고, 우리에게 해를 끼친 "죄 아래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용서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