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더타임스'에게서 '100년에 한 번 나올 만한 목소리'라는 극찬을 받은 테너 배재철. 그는 동양인에게는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던 독일 자르브뤼켄극장과 전속 계약을 맺으며 테너로서 인생의 전성기를 맞았었다. 그러다 2005년 갑작스럽게 찾아온 갑상선암으로 수술 도중 성대가 마비되어, 음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가족과 주변의 도움으로 그 이듬해 일본의 성대 복원 전문의 이시키 박사에게 재수술을 받게 됐고, 다시 무대에서 노래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그 과정 속에 회복된 것은 그의 성대만이 아니었다. 인생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함께 굳건해졌다.
최근 극장에서 재개봉이 확정된 영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감독 김상만, 제작·배급 모인그룹)의 실제 주인공인 테너 배재철 씨(45)를 만나, 그의 신앙과 삶에 대해 들어 봤다.
-영화를 보시고 난 소감을 말씀해 달라.
"오페라 성악가라는 인물이 일반적이지는 않은데, 배우 유지태 씨가 분석을 많이 했더라. 성악을 해 본 적이 없고 저처럼 테너가 아니라 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분인데도 불구하고,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은 후에 하루에 4시간씩 성악 레슨을 받았다고 들었다. 발성과 표정 등 노래하는 부분에선 90% 이상 제 모습을 보여 줬다. 저도 무대에서 예술하는 사람이지만, 배우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새삼 느꼈다.
배재철과 매니저 사와다 코지라는 인물의 관계,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비롯해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잘 표현돼 참 만족했다. 사람들의 눈만 즐겁게 하는 영화가 아닌, 정말 살면서 한번 꼭 생각해 봐야 하는 무엇인가 남겨 주는 영화라는 점이 굉장히 좋았다. 예전에 녹음해 둔 음원을 사용했던데, 그래서 음악적 부분을 영화의 스토리에 맞게 좀 더 극적으로 만들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음악을 다시 시작하게 된 과정에 대해 말씀해 달라.
"제가 다시 무대에 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성악가에게 목소리는 중요할 뿐 아니라 정체성과 같기 때문이다. 성대를 복원하는 수술 이후, 제 목소리가 언제 다 만들어져서 무대에 오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의 목소리가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관객들과 공유하면서, 내 음악 인생을 다시 만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고, 저를 아껴 주고 제 음악을 사랑해 주는 이들과 제2의 음악 인생을 다시 만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무대에 다시 선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음악가로서 늘 최고의 모습으로 멋진 무대를 보여 주려 했었는데, 제대로 노래를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무대에 선다는 것은 제게 매우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마치 발가벗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과 똑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하지 않으면 다시 시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를 아끼고 나의 음악을 그리워하는 분들은, 나의 목소리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도 분명히 이해해 주실 것 같았다. 그런데 관객들이 이러한 저에 대해 무척 공감해 주셨다. 그런 게 없었다면 저는 그냥 잊힌 성악가가 되었을 것이다. 제가 무대에 다시 설 날을 기다리는 분들이 있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시련이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우리는 죄라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늘 상기시킬 수 있는 하나님이 필요한 것 같다. 크리스천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께 가야 한다는 인생의 방향이 있다. 쓰러지고 넘어지고 진흙탕에 빠졌다가도, 다시 나와서 그 길을 가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굴곡진 인생이 본인에게 힘들 수 있는데, 어떤 이들은 또 그것을 보고 힘을 얻는 것이다.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자'라고.
가장 힘들 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와 주셔서, 소망을 품을 수 있었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제가 늘 고백하는 것이 그것이다. '하나님, 예전의 모습은 늘 제가 주인이었어요. 그러나 이제 제가 주인 됨을 내려놓고 주님의 종으로서 살겠습니다' 이것이 신앙인 것 같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일본인 매니저도 예수님을 영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제 일본인 매니저(와지마 도타로·52)는 영화를 제작할 때만 해도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친구다. 저와 12년 동역하고 있는데, 제가 목소리를 잃게 된 지 딱 10년이 됐다. 사실 음악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음악가가 온전한 컨디션이어야 같이 일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제가 목소리를 잃은 후, 한 번도 제 손을 놓은 적이 없다.
제가 2008년부터 지금까지 러브소나타에 참석하는데, 이 친구는 제가 갈 때마다 항상 함께했다. 하지만 행사 때 선물로 받은 책을 보지 않고 그냥 사무실에 꽂아 두더라. 그런데 그가 영화가 중간에 한번 엎어져 완성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자살까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고(故) 하용조 목사님이 쓰신 책을 뽑아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성경을 보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회심을 하고 크리스천이 됐고, 그의 가족들도 세례를 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어떻게 보면 제 덕에 그가 크리스천이 된 것이지만, 제가 한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믿음이 날로 성장하고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앞으로 목표와 비전은.
"제가 살아 있는 한 음악을 하는 것이 사명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데 대한 감사함을 늘 잃지 않고 살고 싶다.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에 대해,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모습들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마비된 오른쪽 성대 대신 왼쪽 성대만 사용하고 있다. 전성기 때의 50%만 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 상당히 좋아진 상태이고, 이전에는 생각지 못한 음정, 노래들도 부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 누구나 질곡이 없는 인생은 없다. 어떤 사람은 가진 게 많지만 마음이 힘들고, 어떤 사람은 가진 건 없어도 마음이 부자다. 우리에게 가장 값진 삶이란, 내가 힘들고 어려워지기 전에 어려운 이웃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능력과 환경이 될 때에도 그들을 돕지 못하는 경우, 신앙적인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늘 주위를 둘러 보면서 원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우리 각자가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순종함으로 잘 키워나가길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또 늘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주신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의지해 풀어나가길 바란다."
현재 그는 영산콘서바토리에서 교수로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다양한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한편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는 9월 7일부터 10월 4일까지 동양예술극장에서 재개봉해 상영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30분에 '클래식 힐링 콘서트'가, 매주 토요일 4회차 상영 후에는 배우 감독과 함께하는 '스페셜 이벤트' 등이 다채롭게 펼쳐져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