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해 메르켈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그때 박 대통령은 독일의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에 탐을 내며 한국 중소기업이 배울 수 있도록 교류를 강화하자고 제의했다. 히든 챔피언이란 규모는 작지만 높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지배하는 우량 기업을 가리키는 말이다. ‘숨어 있는 강소(强小) 기업’이라고도 한다. 이는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1992년에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다.
독일 경제가 강한 것은 세계 1등인 히든 챔피언이 많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실제로 독일이 2000년대 초에 경제가 정체돼 2퍼센트 성장을 할 때도 이들 기업은 8퍼센트 이상의 성장을 이뤘다. 국제경제가 어려울 때도 독일의 히든 챔피언들은 더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필자는 우리 기독교계에도 히든 챔피언 같은 교회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규모는 작지만 교회로서의 기능과 사명을 효과적으로 감당하는 건강한 교회가 많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성장을 지나치게 추구하고 있다. 큰 교회를 선호하며 그런 교회로의 성장을 성공으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다.
물론 우리에게는 큰 교회가 필요하다. 교회가 큰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양적 성장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하고 그것을 이루려고 무리한 방법을 쓰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좋은 교회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과연 큰 교회가 반드시 좋은 것일까? 사람의 몸집이 크다고 건강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몸의 크기와 건강은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이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작은 사업이라도 실속 있게 돈을 벌고 있는가 하면, 큰 기업이라도 덩치만 클 뿐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을 수도 있다.
메르켈 총리는 미국 애플사와 경쟁하는 삼성전자를 부러워하며 박 대통령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세계 최대의 히든 챔피언들을 가지고 있는 건강한 독일경제를 밑바탕에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삼성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대기업에 대해 자랑스럽게 느낀다. 그들이 해내고 있는 일들은 실로 위대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그런 대규모를 지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의 건강한 경제를 위해서는 중소기업들이 알차게 성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다. 다행스런 것은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강소(强小)형 교회’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지만 강한 교회’를 지향하는 운동 말이다. 나는 ‘강한 교회’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건강한 교회’라고 생각한다. 실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데 중요한 것은 교회성장이 아닌 교회건강이다.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교회의 크기가 아니라 교회의 건강이다. ‘강소(强小)형’ 교회를 지향하는 일은 ‘강소(康小)형’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
건강한 교회성장을 위해서는 질적인 면과 양적인 면의 성장 순서와 균형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건강한 교회성장은 ‘영양’가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적 성장을 바탕으로 ‘양’적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건강한 교회성장이라는 뜻이다. 대부분은 ‘성장’이라고 할 때 양적인 측면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건강한 교회성장의 기본은 영적 성장이다. 그리고 건강한 교회성장은 이 두 가지 측면이 모두, 그리고 균형 있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이 두 측면은 상호보완적이다. 질은 양을 낳고 또한 양이 질을 낳는 것이다.
아무튼 교회성장의 ‘영양’가 중에서도 우선적이고도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영적인 측면이다. 교회의 영적 성장이란 교인 개개인의 영적 성숙을 의미한다. 교회 구성원들의 영적 성장은 교회 공동체의 영적 성장을 가져온다. 양적 성장은 영적 성장을 추구하면서 무리하지 않게 추구해야 한다. 교회에서 영적 성장과 양적 성장의 우선순위가 뒤바뀌어서는 안 된다. 영적 성장이 기초가 되지 않은 양적 성장은 건강한 교회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건강한 교회성장이란 교회 구성원 개개인의 영적 성숙이 첫 단추가 되어 발전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인 것이다. 이는 상당한 시간에 걸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며, 동시에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더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교인들의 영적인 성장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가고 눈에 보이는 양적 성장이 최대의 목적이 된다. 그래서 어떤 목회자는 이렇게 쓴 소리를 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며 살아가는지보다 ‘가시적 교회 성장’을 더 우선시하고, 그러한 ‘가시적 교회 성장’이 당연히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가진 것이라고 여기는 순환 고리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건강한 교회성장의 출발점이 되는 개인의 영적 성장은 어떻게 이뤄지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 속에서 내면의 인격이 그 분의 성품을 닮아가고 그 분의 뜻에 동화되는 과정이다. 본질적으로 신앙이란 우리 내면의 영혼이 하나님을 믿어 구원받고 성화되어 가는 것이다. 외면적인 행위는 내면적 변화와 성장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어야 한다. 내면의 변화와 성장 없이 외면적인 종교 행위만 하는 것은 외식이며 가식이다. 사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교회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신앙 경력과 교회직분을 좋은 신앙의 유일한 징표인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교회 안에 팽배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문화는 외적인 표증을 강조하고 내적인 실제는 무시하고 지나쳐 버리는 피상적인 문화다. 우리는 실제로 성숙한 것보다 성숙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쉽게 만족한다.” 안야빌리의 말이다. “성숙하다고 생각하는 것”의 대표적인 예는 주일성수, 헌금, 전도 같은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잘 하면 신앙 좋은 것으로 여긴다. 거기에다 술, 담배를 안 하고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매우 훌륭한 크리스천으로 자타가 인정한다. 그 밖의 다른 영역에서 어떤 삶을 사는지는 별로 따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교회는 ‘영양’ 상태가 어떤지 늘 점검하면서 건강한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교인들의 영적 성숙에 주안점을 두면서 그 ‘경쟁력’을 바탕으로 양적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사람을 일시적으로 모으는 허무한 일에 자원과 노력을 소모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는 사람을 그리스도의 성숙한 제자로 기르는 일에 우선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교회는 그런 ‘영양’가 있는 교회다. 크지는 않아도 건강한 교회, 강(强)하고 강(康)한 교회, 히든 챔피언 같은 교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