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윤리적 비전

리처드 헤이스 | 유승원 역 | IVP | 709쪽

삶에 대한 태도, 살아가는 방식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즉 그것들은 정체성을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태도와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며, 그것이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문제는 '무엇으로 그 태도와 방식의 기준을 삼아야 하는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삶의 기준을 비롯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내용을 생각과 행동과 지침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상황이나 배경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상황과 배경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당연하게 생각하던 개념들을 오늘날에는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기도 하고,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던 것들을 오늘날 아주 중요한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간극 속에 그리스도인들은 적지 않은 갈등을 겪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성경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면서 문자적으로 지키려 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시도는 금방 한계에 부딪힙니다. 그리고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좌절하게 됩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한국교회 대부분의 강단에서는 '성경대로 산다'는 것을 성경에 쓰여 있는 문자 그대로 믿고 지켜야 한다는 점입니다.

성경에는 구약의 율법들을 전복시키는 듯 보이는 예수님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런 모습을 서슴없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자신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할 뿐 아니라 '율법의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입니다(마 5:17-19).

앞에서 율법을 전복시키는 듯 보이는 예수님의 모습이라고 했지만, 엄밀히 말해 이것은 율법의 참 의미를 설명하고 실천할 뿐 아니라 예수님 당시 상황과 배경 속에서 구약의 말씀들을 재해석한 것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재해석'입니다. 과연 어디까지, 얼마큼 재해석할 수 있는 것일까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필연적으로 성경을 재해석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의 재해석은 성경에서 말하는 근본적 가치와 패러다임들을 무시한 채 무조건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근본적인 가치와 패러다임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상황과 배경 속에서 타당하게 재해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자 리처드 헤이스는 본서 <신약의 윤리적 비전>의 서론을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합니다. "마귀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성경을 인용할 수 있다(23쪽)."

그가 경고하는 것은 '성경'을 사용하는 것, 즉 자신의 어떤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성경 본문들을 사용하는 것들에 대한 위험성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지, 우리가 살아가는 복잡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그 성경의 내용들을 토대로 기준점을 찾고 그 기준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굉장히 많은 분량을 사용하며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어떻게 신약성경을 읽고, 그것을 토대로 어떻게 기준을 만들어 가는지 보여 줍니다. 그가 제시하는 중요한 틀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정밀한 본문 독해로써의 서술 과제(descriptive)입니다. 그는 1부를 통해 바울과 '코이노니아'에 대해, 그리고 바울의 전승, 각 복음서의 주제들, 역사적 예수의 역할, 계시록 등에 대해 자신이 본문 독해를 통해 발견한 메시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둘째, 정경의 맥락에서 본문의 위치를 확인하는 종합 과제(synthetic)입니다. 저자는 2부를 통해 종합 과제의 역할을 제시합니다. 먼저 신약성경 내에서 발견되는 불일치들을 비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절충해야 할지를 말합니다. 그 절충 과정에서 저자가 제안하는 집중된 이미지가 있는데, 바로 '공동체', '십자가', '새 창조' 입니다.

셋째, 본문과 우리의 현실을 연계하는 해석 과제(hermeneutical)입니다. 이 해석 과제를 위해 저자는 먼저 성경의 양식을 '규정', '원리', '패러다임', '상징'으로 구분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직 성경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태도를 부적절하게 여기고, 성경 외에 전통이나 이성, 경험의 툴을 사용해야 한다고 제시합니다.

"교회가 성경의 권위를 아무리 심각하게 옹호한다 하더라도, 슬로건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성경으로)는 개념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부적합한 명제이다. 왜냐하면 성경 해석은 결코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은 언제나 이성과 경험의 조명을 사용하고 성경을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 연관시키려 시도하는, 어떤 특정 전통의 영향 아래 있는 해석자들에 의해 읽혀 왔다(330쪽)".

저자는 3부에서 위와 같은 툴-서술 측면(본문 해석의 적확/적합성), 종합 측면(사용된 본문의 범위, 본문의 선정, 초점 이미지), 해석 측면(규정, 원리, 패러다임, 상징, 전통, 이성, 경험), 실천-을 사용해 라인홀드 니버, 칼 바르트, 존 하워드 요더, 스탠리 하우어워스,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 등이 말한 기독교 윤리에 대한 부분을 비평합니다.

넷째, 본문을 따라 살아가는 실천 과제(pragmatic)로, 이는 말 그대로 적용입니다. 저자는 4부에서 '폭력', '이혼과 재혼', '동성애', '반유대주의와 인종 갈등', '낙태' 등을 다루면서 현대 사회의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행동해야 할지 제시합니다.

이 주제들을 다룬 이유는 현대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이슈라서가 아니라(물론 그런 영향도 조금은 있겠지만), 저자가 앞에서 말한 내용들을 실제로 적용하고 제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주제들이기 때문입니다(예를 들면 '낙태'의 경우, 성경 본문으로 기준을 잡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낙태 문제를 다루는 본문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슈'를 다루는 4부로 쉽게 넘어가려는 독자를 만류합니다. 저도 원래 4부를 먼저 확인하고 싶었지만, 저자의 권면을 따라 처음부터 천천히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고 나니, 왜 저자가 뒷부분만 발췌해서 읽는 것을 말렸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4부 앞부분에 나오는 '독자를 위한 조언'을 소개합니다. "이 책의 1-3부를 먼저 읽기 전에는 4부를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여기서 제시되는 규범적 판단은, 오직 앞에서 다룬 신약성경 내용 분석과 그것을 기독교 윤리학에 대한 권위로 사용하는 데 적합한 방법들에 비추어 읽히도록 의도된 것이다(485쪽)."

이렇게 리처드 헤이스는 현대를 성경이 기록될 당시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상황 혹은 배경의 차이 속에서, 어떻게 메시지를 찾고 어떤 방식으로 그 메시지를 토대로 그리스도인의 태도와 삶의 방식을 가져야 할지 제시합니다.

물론 자신이 제시한 이 모든 것들이 완전한 것은 아니며, 여전히 약점도 존재함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저자가 제시한 이런 툴과 적용점은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마지막 문단은 저의 가슴을 뜨겁게 해 주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이것이 신약 윤리학의 과제다(708쪽)."

일반 교우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을 공부하고 계신 분들이나 목회자들은 이 책을 정독하실 것을 적극 추천합니다.

원제: The Moral Vision of the New Testament:
A Contemporary Introduction to New Testament Ethics

/이진용 목사(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