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1923-1996)는 일본 기독교 문학의 거장으로, 특히 그의 대표작인 「침묵」은 "하나님께서는 고통의 순간에 어디 계신가"라는 문제를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박해 상황을 토대로 진지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침묵」은 2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고 연극·뮤지컬·영화 등으로 제작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영국의 저명한 소설가 그래함 그린은 엔도 슈사쿠에 대해 "20세기 가톨릭 문학에 있어 누구보다도 중요한 작가"라고, 「침묵」의 영화화를 추진하고 있는 마틴 스코세지 감독은 "이 책은 내게 삶의 의미를 발견케 해준, 몇 안 되는 예술작품"이라고 평했다.
엔도슈사쿠학회 총무이며 과거 고인과 교제하기도 했던 야마네 미치히로 교수(노틀담 청심여자대학 기독교문화연구소)는 엔도 슈사쿠에 대해 "일본에서 기독교적 관점으로 문학을 시작한 인물"이라며 "그 덕분에 작가들 중에 기독교인이 되거나, 기독교인 중에 작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야마네 미치히로 교수는 고인이 만년에 「깊은 강」을 집필하던 당시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내 평생 다룬 주제가 '일본인과 기독교'인데, 오히려 일반 대중에 비해 교계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쓸쓸하다. 후배들이 나를 밟고 지나가 이 주제를 더 활발히 다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엔도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다짐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엔도의 작품들이 오늘날 주는 교훈에 대해 "한국교회나 일본교회나 교인들에게 신앙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많다. '강하고 두려운 신'의 이미지가 너무 강한 것 같다"며 "그러나 엔도는 딱딱한 교리가 아닌, 연약한 인간이 일상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이야기를 선호했고 약한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문학을 추구했다. 그의 작품들이 환영받는 이유는 바로 그런 점들 때문이 아닐까"라고 했다.
한국일본기독교문학회 회장인 김승철 교수(난잔대학 종교문화연구소)는 엔도 슈사쿠의 작품들이 오늘날 기독교 문학의 활로를 찾는 데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흔히 엔도 하면 「침묵」을 떠올리지만, 그의 작품들 중에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신앙적 주제를 다룬 '경소설'들도 많다"며 "「내가 버린 여자」의 경우 주인공이 버린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죄와 인간이 버린 예수, 그리고 그 아픔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신앙적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면 독자들이 생각의 폭이 좁아지고 비기독교인들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며 "하지만 우회적으로 표현하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보다 대중적으로 신앙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