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한 반에 60명 가운데 40등, 1학년 전체 700명 가운데 450등을 하던 한 남학생이 있었다. 특별한 꿈은 없었다. 단지 농과대학에 진학해서 편안하게 목장을 하고 싶은 소박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의 불화와 넉넉지 않은 환경 가운데 막연하게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농장 주인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시간이 있었다. 1학년 마지막 수업. 그날은 미술 선생님의 은퇴 날이기도 했다. 은퇴하는 미술 선생님은 수업 대신 40년 교직 생활 가운데 깨달은 것을 학생들에게 알려줬다.
미술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시간'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자신의 교직 생활가운데 가장 의미 있던 시간은 섬마을에서 몇 명 되지 않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았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자기를 위해 살았던 시간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고, 오직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했던 삶만 기억에 남는다'는 선생님의 은퇴 소감은 꿈이 없던 소년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한번도 자신과 가족 이외에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던 소년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는 삶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소년은 그 때, '슈바이처와 같은 의사가 되어 헌신과 봉사의 삶을 살고 싶다'는 비전을 갖게 됐다.
구체적인 꿈을 갖고 나서부터, 남을 도우려면 먼저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공부에 빠져 살았던 소년은 2학년 첫 번째 모의고사에서 반에서 20등을 했다. 주위 사람 모두가 놀랐지만, 정작 그 소년은 낙담했다. 최선을 다해 공부를 했음에도 성적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년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고, 결국 반에서 5등을 하고 전교에서는 19등까지 올랐다. 그리고 1학년 때 전교 450등을 하던 학생이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 시험에서는 전교에서 2등의 성적을 냈다.
소년은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고, 국내에 수술대신 자연치유요법과 자연식을 도입해 암환자들에게 제 2의 인생을 전했다. 1992년 국제사랑의봉사단을 창립해 세계 오지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의료봉사단을 파송하고, 보건 대학과 병원 건립을 추진했다. 세계 선교사들의 건강검진을 지원하고, 기부를 통해 사회 환원에도 앞장섰다. 어린 학생들의 리더 육성에 관심을 갖고, 98년에는 대안학교인 '꿈의 학교'를 충남 서산에 세웠고, 2000년에는 서울 강남에 월드리더십센터를 만들기도 했다.
그 소년은 이롬라이프를 설립한 황성주 박사다.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벨뷰사랑의교회(담임 조영훈 목사) 설립 4주년 새생명축제 강사로 나선 황성주 박사는 "하나님 나라"란 주제로 꿈의 중요성에 대해 소개했다.
황 성주 박사는 "자기를 위한 꿈은 달성이 되더라도 교만한 사람이 되고, 달성이 안되면 열등감에 사로 잡히게 돼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꿈이란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비전은 반드시 하나님 지향적이고 타인지향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박사는 "꿈을 가진 인생은 살아 움직이며, 여기에 성령의 충만함이 더해지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인생을 살게 된다"며 "내 꿈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꿈을 붙잡고,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때, 주께서 내 인생을 들어 사용하신다"고 덧붙였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역하는 과정에서 크리스천들은 때론 주님보다 앞서 일하려는 모습이 많은데, 나의 생각과 의지보다는 하나님께 주권을 맡겨드려야 한다"며 "내 야망을 이루기 위한 일이 아닌,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는 킹덤 드림에 내가 참여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