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 제21회 영성포럼이 '부산총회 이후 WCC의 영성'을 주제로 2일 오후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진행됐다.

이날 포럼은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정의와 평화' '복음화와 선교' '자연계와 타종교'에 대해 각각 두 번의 발표와 한 번의 논평으로 구성됐다. 발표자로 김상복·박종화·이형기·이상규·김명혁 박사, 손인웅 목사가 나섰고, 논평은 권호덕·이동주·정일웅 박사가 맡았다.

정의와 평화

먼저 'WCC 영성: 정의와 평화'를 제목으로 발표한 김상복 박사(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는 "WCC가 추구하는 인간과 피조세계를 위한 성숙한 정의와 평화는 최상의 이상이나, 이 이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완성될 것"이라며 "그러나 그날이 오기 전 우리가 사는 날 동안에도 인류가 함께 정의와 평화를 위한 공동적 목표를 위해, '구원'의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노력하는 것은 유익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은 예수의 십자가에서 동시에 성취됐고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구원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영원한 평화를 누리며, 그 정의와 평화는 그에게서 시작해 가정과 그가 속한 공동체로 퍼져간다"며 "완전한 정의와 평화는 주님의 재림 때라야 가능하나, 그날까지 이 땅에 필요한 정의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 모두가 협력하고 함께 섬기는 것은 교회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한 소중한 사역"이라고 전했다.

박종화 박사(경동교회 담임)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학: 생명, 정의, 평화'를 제목으로 발표했다. 박 박사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세계구원의 역사에 진력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를 위해 교회를 부르신 뜻을 성서에서 찾아보니 그것은 '샬롬'(평화를 뜻하는 히브리어-편집자 주)이었다"며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설명하는 이 샬롬은 세 가지의 기둥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정의요, 둘째는 평화, 그리고 셋째는 창조세계의 보전 곧 피조세계의 생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WCC 제10차 부산총회는 이 문제를 여러 제목의 '에큐메니칼 좌담' 프로그램을 통해 활발한 토의와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했다"며 "단순한 신학적 내지 기독교 윤리적 개념 정립의 차원을 넘어 교회가 또 기독교 공동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대해 행동으로 옮길지를 모색하며 그 대안을 마련한 회의였다"고 평가했다.

논평한 권호덕 박사(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는 "많은 경우 지금의 인류는 물질만증주의적 사고방식에 빠져 '생명, 정의, 평화'가 가지는 가치들의 중요성을 잊고 있다. WCC가 생명과 정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면도 "그런데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궁금하다. 성령없이 이 일이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복음화와 선교

이 주제에선 이형기 박사(장신대 명예교수)가 먼저 발표했다. 이 교수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나타난 세계선교와 복음전도'를 제목으로 한 발표에서 "CWME(WCC 세계선교와전도위원회) 역사상 첫 '에큐메니칼 세계선교와 전도 신학지침서'가 1982년에 나왔고, 두 번째 것이 2013년에 (부산총회에서) 나왔다"며 후자에 대해 "WCC 회원 교회들과 관련 기구들의 울타리를 넘어, 매우 넓은 범위의 기독교인들과 교회들에게 호소력을 가진다"고 말했다.

이 박사가 언급한, 이번 WCC 부산총회에서 채택된 문서는 'Together Towards Life: Mission and Evangelism in Changing Landscapes'다. 이 박사는 이 문서에 대해 "그리스도 중심적 보편주의로부터 삼위일체 중심적 보편주의로의 패러다임 이동을 발견한다"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주도적 아이디어로 하여 삼위일체론적 성령, 생명, 그리고 하나님나라에 대한 희망을 새로운 신학의 초석으로 깔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1982년 지침서가 여전히 기독론 중심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 지침서는 삼위일체 하나님, 삼위일체론적인 성령, 생명, 그리고 하나님나라에 대한 희망과 같은 '신앙과 직제'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서 "그리고 복음의 우주적 범위, 선교와 전도의 중심축 이동, 신자유주의의 맘몬 숭배에 대한 대응, 복음과 종교간 대화의 문제 등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게다가 '삶과 봉사' 전통이 이 문서의 '선교' 부분 뿐만 아니라 '전도'의 모든 부분에도 스며들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선교와 전도 신학' 자체의 패러다임 전환을 감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음 발표자로 나선 이상규 박사는 'WCC 부산총회 이후의 복음화와 선교 이해'를 제목으로 한 발표에서 "이 문서(WCC 부산총회에서 채택된 선교문서)가 타종교와의 대화를 강조하면서 포괄적 용어를 통해 타종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종교다원주의를 부정하지 않고 있다"며 "또 '개종이 전도를 실행하는 합법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하여 개종전도를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비록 과거 역사에서 폭력을 동반한 개종 강요가 있었다 하더라도 개종전도 자체를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박사는 "결국 이 문서는 선교의 본질이 다른 종교들에 대한 종교경험 가운데서 친교를 이루는 데 있다고 함으로써 그리스도는 모범적인 선교의 한 정형을 보여주었을 뿐 그 자신이 유일한 복음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며 "포괄적인 용어로 타종교나 종교인을 전도의 대상으로가 아니라 대화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볼 때 이 문서 또한 그리스도 유일성에 기초한 전도, 복음의 외연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평한 이동주 박사(선교신학연구소장)는 "WCC 부산총회 선교선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사역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오직 성령이 모든 창조세계와 문화에 편재해 있고, 생명을 긍정하는 모든 문화와 종교 속에 내재해 있어서, 신빙성 있는 선교란 타자를 선교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며 "이러한 하나님의 편재신앙은 WCC 선교신학적 맥락상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현재하심으로 인해 타종교 안에서도 하나님의 섬기고 있다는 의미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왜곡된 신관"이라고 비판했다.

자연계와 타종교

이 주제의 첫 발제자로 나선 김명혁 박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는 '부산총회 이후 WCC의 영성: 자연계에 대한 이해'를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 박사는 "WCC에서 배워야 할 점들 중 하나는, WCC가 사회적이고 세계적이며 우주적인 관심, 연대와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라며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에게만 있지 않고 자연계 전부에게로 향하고 있는데 우리 개신교회, 특히 보수교회들은 이 점을 소홀히 하며 간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WCC가 강조하는, 아니 성경 말씀이 강조하는 자연계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며 "사랑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 대한 사랑, 특히 죄인들을 사랑하는 것이 매우 귀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사랑으로 돌보시는 자연만물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다음으로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원로)는 '기독교인의 자연 이해와 타종교 이해'를 제목으로 한 발표에서 "창조신학과 생태신학을 중심으로 미래의 신학이 지구생명공동체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며 "또한 종교 문제는 하나의 지구문화공동체를 지향하면서 문화제국주의를 극복하고 종교간 대화와 협력을 추구함으로써 모든 종교가 인류의 평화를 위해 공헌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논평한 정일웅 박사(전 총신대 총장)는 특히 손인웅 목사의 발표와 관련, "생명목회가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돌보는 생명신학에 근거해 이루어지는 디아코니아신학으로 명명한 것은 목사님의 넓은 신학적 통찰"이라며 "이러한 신학적 이해에 따라 손 목사님이 시도하시는 덕수교회의 생명목회는 이 시대에 가장 모범적인 복음의 선교사역과 목회사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 이제 세계 향한 시각 가져야"

한편 기독교학술원 원장 김영한 박사는 이날 개회사를 통해 WCC 부산총회의 긍정적인 면으로 △복음주의권 세계지도자들의 우호적 참석 △사회항목들이 절제되고 교회항목, 특히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교회와 성령의 강조 △"WCC가 공식적으로 종교다원주의, 용공, 동성애를 결의한 적도 없다"(WCC 월트 알트만 의장)는 사실을 밝혀준 점 등을 꼽았다.

반면 미흡했던 점으로는 △선교 선언문에 생명에 대한 진정한 기독론적이고 구원론적인 이해가 빠져 있는 점 △표현은 온건해 졌으나 선교나 전도, 타종교에 대한 관점은 '바아르 선언서'(1990)에서 크게 달라졌다고 보이지 않는 점 △동성애에 대한 입장 표명이 없었던 점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선언문'이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북한의 인권, 특히 생존권 위기를 불러왔다고 지적했지만, 수용소나 공개처형 등 북한 정권에 의해 자행되는 인권 유린 상황에 대해 별다른 비판을 하지 않은 점 등을 들었다.

김 박사는 "부산총회는 WCC가 한국교회에 주었던 각종 오해들을 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이러한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며 "이제 한국교회는 지구촌 교회로서 세계를 향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WCC적 에큐메니칼 운동이 성경적 원리에 따라 전개되도록 신앙적 역동성을 불어넣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