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부활절은 기독교만의 특별한 절기인 냥 무관심하고 더 나아가서는 부인하는 경향이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단순히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만을 살고 죽는 것이라면 선이나 진실 같은 것은 허황된 허상에 불과할 것입니다. 단 한 번뿐인 짧은 삶을 살아가면서 남을 먼저 생각하고, 있지도 않는 신을 생각하면서 허비하는 시간과 재정과 생명이 너무 아까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이 나라와 세상을 지탱하게 한 위대한 인물들의 희생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도 바울은 특별히 더 그랬습니다. 한 평생을 혼자서 온갖 수고와 고생을 감당하면서도 오로지 자신을 부르신 주님만을 위해 아낌없이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러했던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긴 말씀 한 마디는 오늘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6-8)는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무엇입니까? 한 평생을 다 살고 죽음 앞에서 당당하게 선포하는 한 인생의 마지막 승리의 선포입니다.
사람이 이 정도로 마지막 순간을 장식할 수 있다면 그는 누가 뭐래도 승리한 사람이요 성공한 사람일 것입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토록 당당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까요? 바로 부활신앙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이 세상을 다 살고 다시 태어나는 날에는 육신의 한계를 넘어선 신령한 새 몸으로 태어나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영생할 것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당당하게 부활신앙이 자신의 일생을 붙들어 주었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19)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최소한 그는 사람이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부활의 기초는 두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결코 부활은 기독교인들만의 허황된 소망이 아닙니다. 이는 역사적인 사건이었고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John S. 웨일은 "기독교는 종교가 끝나는데서 부활과 함께 시작한다. 부활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부록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 자체이다."고 설파하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부활을 빼놓고 신앙을 논할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복된 부활의 계절에 우리들에게 요구 되는 것은 부활이 가능한 것인가가 아니라 부활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있는가? 인 것입니다. 이 멋진 계절에 부활의 신앙으로 삶이 신선하게 변화되는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