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저를 왜 이 길로 인도하시는지…” LA수피리어코트 판사에 출사표를 던진 앤 박(Ann H. Park, 한국명 박향헌) 검사가 갑자기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으려는 듯 다소 급히 말을 이어갔다. 범죄와 20년 간 싸워온 베테랑 검사가 ‘한인 여성 최초의 선출직 판사’라는 과업에 도전하며 한인 동포 사회와 만나는 바로 그 자리였다. 그는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LA수피리어코트의 선출직 판사에 도전하게 된다.
그가 출마를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 내에서 판사의 힘은 막강하다. 현재 재판장에 서 있는 사건 당사자뿐 아니라 그 사건의 판례가 향후의 사회의 입법, 행정, 치안, 복지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상 이상이기 때문이다. 현재 LA수피리어코트의 판사 480여 명 가운데 한국계는 마크 김 판사, 태미 류 판사, 하워드 함 판사, 카를로스 정 판사, 리사 정 판사, 도로시 김 판사 등 6명뿐이다.
그는 전세계 한인사회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LA에서 여성인 자신이 최초로 선출직 판사에 당선될 경우, 한인사회의 힘을 주류사회에 확인시켜 줌과 동시에 한인 차세대들에게 큰 도전이 되고 그들의 공직 진출이 활성화 될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다. 그는 “이제 한인사회가 한인을 이해할 수 있는 판사를 배출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한인이니까 밀어 달라”는 소리가 아니다. 차세대 한인을 향한 그의 애정은 각별하다 못해 유별난 수준이다. 그는 지난 3년간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KOWIN) OC지부에서 여고생들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해 왔다. 이곳에서 많은 한인 여고생들을 만나 그들의 멘토 역할을 자처하면서 한인 차세대들을 향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 터였다. 이민자봉사단체인 한미연합회(KAC), 정치단체인 한미민주당위원회(KADC)에서 적극 활동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년간 LA 검사로 재직하며 40여명의 한인 검사 중 현재 가장 고참인 그는 한인검사협회도 창립해 더 많은 한인 후배들이 공직에 들어설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한인들만을 위한 판사가 되고자 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는 “법은 보호를 원하는 이들에게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돈으로 좋은 변호사를 선임하는 사람이 재판에서 이긴다”는 미국 법정의 ‘쓰린 현실’을 바로잡을 바른 판사가 되어 보겠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 박 검사 자신이 과거 약자의 자리에 있었으며 또 그런 약자를 위해 싸워 왔기 때문일 것이다. 1980년 17세의 나이로 가족과 함께 이민 와 당시 어려운 환경과 악조건을 극복하며 학업에 몰두해 2년 만에 UC버클리에 입학했고 졸업 후, 곧장 해이스팅스 법대로 진학해 변호사가 됐다. 가난한 나라의 키 작은 동양 소녀가 이민오자 마자 명문대를 나와서 변호사가 됐으니 사실상 성공한 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1992년 LA폭동을 목격하고 사회적 ‘약자’인 한인의 아픔을 나누고자 돈 잘 버는 변호사를 포기하고 북가주의 한인봉사단체인 이스트베이 코리안커뮤니티센터에 디렉터로 들어갔다. 다시 약자의 편에 선 것이다.
그러다 그는 LA 검사로 발탁돼 여성, 아동청소년, 가정폭력, 성폭력 등의 문제를 전담하는 전문 검사로 자리를 굳혔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약자를 돕는 검사를 자처했지만 역시 검사는 검사다. 흉악한 범죄에 대해서는 끈질긴 노력으로 강력한 처벌을 이끌어 냈으며 증인이 살해되고 본인의 생명이 위협에 처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싸웠다. 누명을 쓴 피의자를 구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약자에게 부드럽지만 범죄에는 한 치의 타협도 없는 강골 중 강골인 그의 성격은 목회자인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2012년 소천한 故 박은수 목사다. 그는 재건교회의 원로급 지도자로 부산에서 목회하던 중 이민목회에 소명을 받고 북가주로 이주했다. 재건교회는 일제 시대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투옥됐다 광복을 맞이해 출옥한 소위 출옥성도를 중심으로 한 보수적 교회다.
정면돌파도 박 검사의 특기다. 그는 출마 전 당선 가능성을 놓고 여러 컨설턴트를 만난 결과 앤(Ann) 이라는 이름, 여성이라는 점, 검사라는 직업, 현재까지의 경력 등이 미국 주류사회 유권자에게 상당히 어필할 수 있다는 답을 얻었다. 그러나 한인 출신이라는 것이 다소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드러내지 않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는 소견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제가 한인인데 당선을 위해서 한인임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그는 동포간담회 자리에서 “하나님”이란 단어를 수 차례나 쏟아냈다. 반기독교적 미국의 현 정서 속에서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는 것도 “나는 목회자의 딸”이라는 탄탄한 영적 자부심 때문일까? 그의 공식 이력에는 자신이 세리토스장로교회에서 10년째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고 있다는 것까지 당당히 넣어 놓았다.
현재 박 검사는 6월 선거를 앞두고 25만 달러 선거 자금을 모금하고 있다. 4일 동포간담회에는 강일한 후원회장(LA한인축제대회장, 세계한인유권자총연합회장)을 비롯해 LA한인회,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재미대한체육회, 호남향우회, 한인기독교커뮤니티개발협회(KCCD),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등의 관계자들을 포함해 약 50여 명이 참석해 지지를 보냈으며 현재까지 약 6만 달러가 모금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공식적으로는 마크 김 판사, 태미 류 판사, 데이빗 웨슬리 판사, 라티노검사협회도 박 검사를 지지한 상황이다. 한편, 오는 13일 오후 6시 한인타운 내 옥스포드팔래스 호텔에서는 박 검사를 위한 후원의 밤 행사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