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가 일부러 진주를 품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연찮게 굴러 들어온 작은 모래 한 알이 진주를 만든다. 조개는 아픔을 주는 모래를 뱉어 내려고 발버둥치지만 모래는 결코 나가지 않는다. 인고의 세월이 흐른 뒤 영롱한 빛을 발하는 진주가 탄생한다. 상처와 허물로 인해 아픔을 당하지만 그 상처에서 영혼의 향수가 뿜어 나온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상처를 받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스스로 버림받고 고통당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상처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님은 고통이란 선물을 우리에게 주신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아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 깊은 생명과 은혜를 발견하고 아픔을 승화하기에 이른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부연설명하지 않아도 좋을 책이다.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Pilgrim Progress)은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이며, 수십 억 사람들이 소유하고 사랑하는 책이다. 출간된 지 벌써 400년 가까이 되었다. 수백 년 동안 단 한 번도 절판되지 않았고, 끊임없이 재출간되고 있으며,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 새롭게 출간되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가장 많은 출판사에서 번역했다고 한다. 천로역정에 대한 사랑은 가늠하기 힘들다. 심지어 천로역정이 성경보다 더 빨리 번역되어 출판된 나라도 적지 않다. 성결교의 탁월한 부흥사인 이성봉 목사님께서 부흥회 시간에 직접 천로역정 강해를 하실 만큼 사랑했다. 뿐만 아니라 영국 설교의 황태자로 불린 찰스 스펄전은 천로역정을 무려 100독 이상 했다고 한다.
천로역정이 그토록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무척 궁금해졌다. 그저 성경 이야기와 너무 닮아서일까. 아니면 재미난 우화 때문일까. 무엇이 천로역정을 인류의 역사에 길이 남을 대작이 되게 한 것일까. 자못 궁금해진다.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선입관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작가와 천로역정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존 버니언의 생애
존 버니언의 아버지는 국교도인으로 직업은 땜장이였다. 냄비나 다른 가정용품을 수리하며 지냈다. 후에 버니언도 그 직업을 물려받는다. 그래서 종종 버니언은 '땜장이 버니언'으로 불렸다. 집안 형편상 학교에 보낼 사정이 되지 못했지만, 버니언의 아버지는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교육을 시키고 싶어 초등학교 수준의 읽고 쓰기를 배우는 문법학교를 보낸다. 존 버니언이 학교에서 배운 전부이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의 아버지도, 그 자신도, 버니언이 역사에 길이 남을 작가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1642년 일어난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전쟁에 참여한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버니언은 동료들의 죽음을 보고 죽음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20세가 되던 해 마거릿 벤틀리라는 여자와 결혼을 한다. 그녀는 신실한 청교도 신앙을 가진 여인으로, 성실하고 독실한 청교도 가정에서 자라났다. 아내의 권유로 청교도 신앙을 갖게 된 버니언은 1635년 베드포드 침례교회의 신자가 된다. 메리 역시 어릴 적 부모를 여읜 고아로 자라나 혼수를 갖고 오지 못했다. 대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유산처럼 물려준 아더 텐트의 <평범한 사람이 하늘에 이르는 좁은 길>과 루이스 베일리의 <경건훈련>이란 두 권의 책을 가져 온다. 버니언은 아내의 책 혼수품을 읽으면서 신앙에 눈을 뜨게 뜨고 구도자의 길을 간다.
역설적이게도 아내의 지참금으로 가져온 신앙의 책들은, 버니언을 더욱 낙담케 하고 세속적 충동에 휘말리게 하는 이유가 된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정황을 살펴보면 금욕적이고 세속을 정죄하는 듯한 책의 내용이 율법의 정죄와 같은 효과를 발휘한 듯하다. 선악과를 금지한 법 때문에 더욱 탐심이 일어나 듯, 금욕을 강조하는 책이 더욱 죄의 구렁텅이로 몰아간 것 같다. 다행이 버니언은 성경을 다시 읽게 되면서, 자기 죄로 인해 죽어야 하지만 구원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힘을 얻는다. 이러한 영적 순례와 갈등은 더욱 깊은 신앙으로 성숙하게 했고, 유능한 작가와 설교자로 다듬어 갔다.
버니언의 성숙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우울증 증상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상상력과 직관력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첫번째 작품인 <우두머리 죄인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라는 책에서 고백하듯, "주님의 노여움을 살 거라는 두려움이 있어 어릴 적에도 무서운 꿈을 꾸고 무시무시한 광경 때문에 공포에 떨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간과(看過)할 영적 동요들을 루터처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이러한 영적 고뇌와 상상은 결국 그의 저술 활동과 설교 사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밑거름이 된다.
천로역정을 쓰게 한 영국의 상황
영국 내전은 시민전쟁(English Civil War)으로 알려져 있으며 1642-1651년 사이에 일어났다. 근대를 알리는 이 전쟁은 청교도 혁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영국 황실을 옹호하는 귀족 중심의 왕당파와 시민 중심의 의회파 간의 내전이다. 삼차에 일어난 내전은 결국 비국교 중심의 의회파가 승리하는 것으로 십년 동안의 전쟁은 막을 내린다. 이후 찰스 1세는 처형되고, 찰스 2세는 추방되었으며, 의회파는 영국 연방을 구성하여 올리버 크롬웰을 호국경으로 선출하기에 이른다. 영국 내전은 근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왕이 아닌 시민 다스리는 시민들의 국가를 만들려는 이상에서 출발했다.
불행히도 영국 연방은 순탄하지 않았다. 종교개혁의 바람을 거세게 맞은 영국은 국교회와 비국교회로 종교는 양분되어 있었고, 비국교회 안에도 가장 거대한 장로교회를 비롯하여 침례교회와 다른 많은 분파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물러섬 없이 주장했다. 이러한 분파주의가 크롬웰의 정치 안에 요동치고 있었다. 의회파는 온건파와 극단적 분리파로 나뉘어 극심한 대립을 가져왔다. 전쟁 4년 후 올리버 크롬웰은 1653년 호국경에 올랐지만 의화와 마찰이 심해져 같은 해 의회를 해산하기에 이른다. 5년 후인 1658년 크롬웰이 사망하자 결국 내분된 의회는 안정을 위해 왕정복고(1660)를 단행하기에 이른다. 스스로 패망을 선언한 셈이다.
1660년 5월 29일 런던에 입성한 찰스 2세는 영국 황제에 오른다. 아버지인 찰스 1세의 처형에 서명한 생존한 13명의 판사들을 처형하고, 올리버 크롬웰의 무덤을 파 참수하는 '부관참시'를 저지르는 등 보복정치를 실시한다. 찰스 2세의 탄압이 시작되면서 버니언의 설교도 탄압의 대상이 된다. 설교를 그만두라는 명령에 불복하자, 그는 즉시 체포되어 '비밀집회 금지령 위반죄'로 베드퍼드셔 감옥에 수감된다. 그는 설교를 그만 두겠다고 하면 곧바로 석방시켜 주겠다는 유혹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결국 그를 아끼던 판사조차 어쩔 수 없이 재판에 회부하여 종신형을 언도하고 12년간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수감 생활은 버니언에게 큰 아픔과 고난의 시기였다. 특별히 가족을 돌보지 못함으로 인해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거지처럼 살아야 했다. 이러한 심정을 담은 것은 그의 첫번째 책인 <우두머리 죄인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1666년)>이다.
셋째 아이를 낳고 첫 부인이 죽게 되자, 버니언은 두 번째 아내인 엘리자베스를 맞이한다. 그녀는 용감한 그리스도인이었다. 버니언이 박해를 받을 때 그의 곁에서 지지했고, 석방해 달라는 탄원까지 했다. 마침내 1672년 버니언은 석방되어 베드퍼드셔의 설교자로 부름을 받는다. 비록 5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마음껏 사역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1667년 체포된다. 비록 6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는 그의 영혼을 짓눌렀다. 그러한 고통과 역경은 마침내 그의 불후의 명작인 <천로역정>를 낳은 산파 역할을 한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천로역정은 1차 수감 때 이미 저술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나 출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다 2차 수감 때 비로소 다듬고 수정하여 출간하게 된다. 천로역정 1부는 1678년에 출판했고, 2부를 첨부하여 1684년 합부로 출판하기에 이른다.
고통의 모래를 품고 영롱한 진주를 키우다
설교자의 가장 큰 고통은 설교하지 못하는 것이다. 신앙양심을 부인할 수 없어 감옥에 들어간 버니언의 고통은 더 이상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가족을 향한 걱정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독서광이었던 버니언은 감옥에서 성경을 집중적으로 읽기 시작한다. 어떤 책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의 성향으로 추측해 본다면 적어도 100독 이상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성경이 유일한 안식처였고, 위로였고, 소망이었던 셈이다.
감옥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버니언은 하나님께 투정하듯 기도한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싶은데 왜 감옥에 갇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응답은 뜻밖이었다. '몸은 갇혀 있지만 글은 쓸 수 있지 않느냐.' '몸은 갇혔으나 말씀을 갇히지 않는다'는 사도 바울의 말이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어릴 적 아버지가 보내준 문법학교 덕택으로 그는 미천한 신분임에도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 버니언은 성경을 읽으면서 책을 쓰기 시작했고, 죽기 전까지 무려 60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가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결코 천로역정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버니언은 감옥에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그 고통의 결과 위대한 영적인 서적이 탄생한 것이다.
상처는 아프다. 그러나 주님은 그 상처에서 생수의 강을 흘러나오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다. 아프다고 도망가지 말자. 아픔을 품에 안고 믿음으로 이겨내야 비로소 영롱한 영적인 보석이 탄생하는 법이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정현욱 목사(총신대 신학대학원 졸업, 로고스서원 연구원, 부산극동방송 '책과 음악의 행복한 만남(매주 목)' 진행, 부산반석교회 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