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래로 바다 위 비쳐지는 海岸 가 바다 한 중간,
덴마크의 몇 십 개 풍차에너지 돌개바람 탑이 멀리 줄 서있는데,
잠시 후에 엔진소리 잦아지며 몸체 내려앉는 모스코바 비행장
잠시 전 지나가던 비가 멈췄는지, 중간 중간 물 젖은 활주로에는
신선한 바람이 비껴 스친다.
화려했던 러시아 도시는 20세기 초기를 넘기면서 붉은 광장으로 변하고
무서운 도살현장의 중심 초점 현장이 되었다는 것
뻘건 헌 겁의 대 행렬이 무장군사와 시민들로 혼합한
혁명 행진하는 소리 난무하는 광장으로 되더니
마침내 세계의 절반을 휘덮는 무서운 붉은 흙바람을 일으켜 내고
드디어 우리 고국 땅에까지 넘어 와 피비린 내 나는 戰爭으로 번져서
수백만의 서러운 나의 이산가족 그리고 70년이 넘는 조국의 아픈 피상처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동족상잔의 현장이 되어, 아물 줄을 모른다.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차르(황제) 표트르 벨리키 1세 가 정권에서 밀려날 때
누이 에카테리나 로, 외부와의 소통을 끊기게 하여, 머물게하고 있었던 城터.
외부와 차단된 화려한 정교회 성루 바깥쪽은 잔잔한 호수가 드리웠는데
어쩌다 몇 마리 안 되는 간혹 백조 와 흑조는 몸을 풀어 물결을 흔든다.
黑鳥 하면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떠오르게 하는데
몇 해 전, ‘블랙 스완’ 으로 세상 사람들로 매력을 끌었던 영화도 있었다.
조국 古話에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닮은, 러시아의 說話
호수에 화려한 백조가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
옷을 잃어, 찾다가 못 내, 저녁이 되고, 白鳥로 다시 날아가지도 못하고
화사한 <오데트>공주로 變身되어
여기에 나타나온 <지그프리트> 왕자는 사랑에 빠진다.
화려한 사랑에는 언제나 흑 구름이 끼어들기 마련
또 다른 이웃魔王 <로투발트>가 나타나와 두 사람의 사랑에 흙물 뿌리는데
<백조의 호수>는 실재로 <쌍뜨 표투루(St. Peter)>市의 아름다운 <네바>강 하구 강변의 극장에서 그날 저녁나절에 직접 보고 돌아왔습니다. 눈부시도록 화려한 무대였습니다. 하지만 <챠이코프시키>가 이 음악의 모티브를 구상한 호수는 <모스코바>의 이 <모보데비치>수도원 묘지공원 가까이 아름다운 호수로, 어스름한 달 빛 아래서 구상이 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위의 詩作에서도 어느 정도의 1~3막 무용 무대의 착상을 통해 짐작하게 될 수는 있겠지만, ‘현실의 아름다움’은 우리 생활 속에 간혹 씩은 영위 되는 것이기도 하겠으나, 그게 그리 지속적인 현실의 아름다움으로, 결코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임을 누구나 다 각각의 자신 삶 속에서 인정되는 일입니다. 우리의, 아니 당장 나의 지나간 생애에서 조차도 이는 어김없이, 첩첩한 굴곡과 요철의 생애를 더듬어 왔음에 나는 간혹 씩, 새김질하군 하면서 보냅니다.
한데, 그런데 분명히 찾아내게 되는, 나의 지나쳐 온 무대(舞臺) 위도 역시, 나 자신이 발걸음을 점철(點綴)해 온 무대 위가 아니라, 이들 무대 뒤에서는, 그 점철되어 온 다난함 들이, 어느 한 참 예술성 풍요한 生命의 演出家가 있어, 나의 무대 위를 분주히 裝置해 내 오고, 또 나의 주변에서 등장해왔던 여러 캐릭터 캐스팅 된 인물, 인물群들, 한 사람, 두 사람_ 그게 白鳥이든 黑鳥이든, 그 온 등장인물들로, 그래서 화려하거나, 질곡 되는 무대장치로 다듬어온, 이 노련한 연출가, 그 분이 분명하게 계셔 왔다는, 결론으로 나의 80년 가까이의 생애에서 분명하게, 마음 안에 듬직하게, 결정적으로 지금에 사 마음 새겨져와 줍니다.
어느 누구나의 생애인들, 그게 그리 간단하게 설정되어져 온 것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그 뒤 쪽에는 이를 진두지휘해 온 노련 된, 전능무한하고 위대하신 연출가가_ 이 모든 生涯 湖水무대 위에다가_ 저 場面, 이 場面들을, 일일이 뛰면서 다듬어, 그래서 이런 저런 화려한 줄거리들로 펼쳐 내게 하고 계시며, 또 이 비극, 저 희극을 理由 분명하게 거두고- 또 펼쳐 내게 하시는 그 분이 계심을, 확실하게 우리 現實로, 이제서 야 확실히 터득해 내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