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리한인장로교회(담임 서신일 목사)에서는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요세미티 광야 기도원에서 전교인 수련회를 개최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히11장)'라는 주제로 진행된 수련회에서 서신일 목사는 "표면적인 개인의 욕망 성취를 위한 믿음이 아닌 하나님의 인격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본질적인 믿음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고 전했다. 이에 본지는 '믿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기고를 7회에 걸쳐 연재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믿음에 대한 대표적 의문점이 있다. 교회에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그러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성도들에게는 너무 힘든 문제다.

기독교대백과사전에 나타난 의미로 '믿음이란 어떤 사물에 대한 신념과 어떤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가르키는 말'이다. 또한 신학적 개념으로는 인간이 절대자, 또는 초월자에게 이해하는 것을 나타내거나 반응하는 표현으로 나타나 있다.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현존하시는 하나님이 주신 계시에 대한 응답이다. 사물에 관한 이해나 지식이기 전에 하나님에 대한 것이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 이 과정에서 사람마다 반응하는 것이 다르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현존은 그 분의 아들 예수님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인격은 예수님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현존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에게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신념이 아니라 신뢰이며 추상적이기 보단 인격적 관계이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 믿음은 사실에 관한 이해보다는 인격과 신뢰가 짙은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란 하나님의 인격과 인간의 인격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이다. 그 사이가 어떤가? 냉담, 뜨거움, 미지근함... 모두 다 다르다.

통상 그 사람이 신앙이 좋다, 어리다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에서 그 사람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아닌가? 우리는 기계를 "믿는다"하지 않는다. 고장이 나서 열심히 빌면 스스로 고쳐진다고 믿지 않는다. 비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계가 고장이 나면 고칠 뿐, 설득할 수 없다. 왜 그런가? 기계는 인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이란 인격적인 것이기 때문에 바램이 생긴다. 인격적이기에 요구하고 내 소원을 듣고 알려주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이야기할 때 이런 말을 한다. "저의 기도가 하늘 보좌를 움직여 응답되기를, 아니 응답되었음을 믿는다"라고. 사람들은 하나님이 인격적인 존재이기에 이런 말을 한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인 관계로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과연 인격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죽은 존재로 생각하는가?

신앙생활에서 무엇이 신앙에 가장 좋다고 하는가? 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을 내가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는 담이 전혀 없는 사이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뇌'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아 공허하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진정으로 인정할 때 참된 기쁨이 있다. <계속>

버클리한인장로교회 담임 서신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