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월남전 참전시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채명신 장군이 소천을 했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돌아가신 채 장군이 국가에서 정해준 장군의 묘역이 아닌 병사들이 묻혀 있는 곳에 묻히게 되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 온다. 참 귀한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고인에 대한 기사를 이것저것 살펴보았다. 고인은 참으로 대단한 군인이었다. 이북 출신으로 공산당에 참여하라는 김일성의 권유를 뿌리치고 남쪽으로 와서 군인이 된 후 6.25 사변에 참전해서 많은 전공을 올리고 후에 월남전에 참전해서 훌륭한 군사전략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용장이요 지장이자 부하들을 끔찍히 아꼈던 덕장이었다고 한다.
그에 관한 글을 읽던 중 문득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본래 어머니 뱃 속에서부터 신앙을 가진 모태신앙인으로 본래는 목회자가 되려고 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련이 후원하는 공산당이 이북에 들어온 후 교회를 핍박하는 것을 목격하고 또한 이에 대항하는 청년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관학교를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그는 군인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러나 언제나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살았음을 볼 수있다.
6.25 전쟁 중 한번은 인민군에게 포위가 되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다. 그는 부하들을 축복한 후 각자 알아서 탈출하라고 말한 후 스스로 자결하기 위하여 권총을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는데 총알이 불발되었단다. 그 모습을 본 옆의 부하가 하나님이 죽지 말라고 하시는데 왜 죽으시려고 하느냐며 말리자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구사일생으로 그 곳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 때문에 희생된 사람들에 대하여 늘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한번은 유명한 북한군 지휘관을 생포해 처형하였는데 그의 부탁을 들어 그의 자녀들을 끝까지 보살펴 주었다고도 한다. 그는 그렇게 수많은 사선을 넘으면서도 살아남았고 장수를 누린 후 이제 많은 부하들의 애도 속에 자기가 사랑하던 병사들과 함께 묻혔다. 그의 장례식에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유명가수가 그가 제일 사랑하던 찬송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보니”를 불렀다 한다. 참 멋있는 장수이자 신앙인의 삶이요 죽음이다 싶다. 영혼을 살리는 목회자가 되려 했던 청년이 전선을 누벼야 하는 군인이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지만 이 분 안에 있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 피비린내 나는 전선에서도 변함이 없었구나 싶다. 전쟁 중에도 부하들 한 명 한 명을 양을 살피는 목자의 심정으로 보살폈고 심지어는 적군까지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영락없이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살기만 하면 삶도 죽음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새삼 보여준 귀한 분이시다. 모쪼록 이런 군인, 이런 사업가, 이런 교사, 이런 일꾼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