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새벽예배. 한국교회 부흥의 첫 번째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척교회부터 대형교회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의 신앙성숙과 더불어 부흥을 소망하는 곳에는 새벽예배의 열기가 더욱 뜨겁다. 이에 기독일보는 남가주 한인교회들의 새벽 설교를 집중 조명하여 새벽제단에서만 내리는 특별한 은혜를 나누고 개교회를 넘어 지역과 미주 전역의 부흥을 함께 소망하고자 한다.
밸리연합감리교회(류재덕 목사)는 한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인 요즘, 2일부터 30일 동안 특별 새벽기도회를 시작했다. 아마도 2014년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3일 새벽에 류재덕 담임 목사는 열정적인 설교로 성도들에게 인생을 하나님께 맡길 것을 당부했다. 류 목사는 “더 이상 안정성, 안일함에 갇혀서 세월을 허비하지 말고, 하나뿐인 인생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자”며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으로 가득 차 아무 해를 받지 않는 자들이 되자”고 했다. 다음은 설교 요약문.
은퇴하고 나서 언젠가는 하겠지, 나중에 하겠지, 언젠가 시간 날 때 취미삼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그리고 나중에 좋은 시간 가져보리라는 생각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무엇인지 터득하고 싶고 원하는 대로 가보리라는 마음과 언젠가 해보겠지 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시간은 훌떡 지나가버리기 쉽습니다. 올해 태권도를 시작했는데 시작한 이유가 있습니다. 올해 시도하지 않으면 앞으로 못할 것 같아서 했습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서, 나중에 서울에 와서 해보리라는 마음을 가졌는데 시간이 나지 않아 못했습니다.
그리고 군대 가서 특공 훈련을 받고 여러 가지 배우면서 좋았지만, 제대하고 목회를 시작하면서 도저히 시간이 안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늦추지 말고 지금 해야 되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분은 은퇴하고 나서도 20년 동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해 후회하는 것을 봤습니다. 이 언젠가를 오늘로 끌어내야합니다. 언젠가부터 시작하리라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이 주신 뜻을 놓치지 쉽습니다. 사단은 늘 뒤로 미루게 하고 언젠가 하리라는 마음을 줍니다. 언젠가를 오늘로 끌어내리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골리앗이 외모가 크죠. 감당할 사람이 없습니다. 맞장 뜰 사람 나오라는 거에요. 1:1로 싸우자는 겁니다. 다윗이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상해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내가 나가서 저 자를 감당해야 되겠다라고 말입니다. 사울도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 골리앗의 페이스에 말리고 그의 외모만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야기하는 겁니다. 너는 칼과 창으로 나가지만 나는 네가 모욕하는 만군의 하나님의 힘으로 나가니라. 그래서 다윗은 이기게 되었는데, 우리는 이 안전성이라는 안일함에 갇혀서 제대로 쓰임을 받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하면 안전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저는 여러분이 이 30일 동안 안주함에 벗어나서 영원함을 바라며 나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롤러코스터 위에 긴장되는 곳에서부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후회함이 없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국 내 인생에 가장 하길 원했던 것에 집중할 때 그것이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생을 온전히 불태우고 나면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갈 때, 결국 태울 것이 없고 오직 존귀한 예수그리스도만이 남아 있기에 그 어떤 것도 해함을 받지 않는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만이 진정한 평안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고 기록했습니다. 마음에 두었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말씀을 찾아봤더니 그냥 마음에 두는 것이 아니라 커버를 덮고 지킨다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주의 말씀을 깊은 곳에 두었더니 사단 마귀가 틈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다윗의 이야기, 다니엘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 그릇을 넓혀야 하고, 육신의 장막을 벗고 나면 남은 영혼의 양만큼 사는 것입니다. 이 30일 동안 새롭게 마음을 다지고 하나님 앞에 헌신하시길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