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보고 들리는 것이 ''종교'가 '정치'에 관여해도 되는가?' 라고 하는 중세부터 심심찮게 되풀이되어온 논쟁 거리였습니다. 대학을 다니는 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종교와 정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했더니, 뜬금없는 질문에 "그게 무슨 소리야? 종교와 정치를 따로 이야기 할 수 있겠느냐?"고 대답을 합니다. 의아해서 재차 물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냐?" 했더니 학교에서 배우길 지금까지 유럽이나 미국의 역사 속에 종교가 개입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니?" 라고 묻자 아들이 대답하길 "피곤해 졌다."는 것입니다. "잘됐으면 이렇게 대놓고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야 한다고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뭐 어려운 이야기를 피하고라도 쉽게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여 힘을 갖게 되었을 때 부흥보다는 오히려 폐해와 소멸로 이어졌다는 것이 공식인 것입니다.
요즘 모 신부가 '시국미사'니 뭐니 하면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이나 종교집단들이 대거 단체 행동을 통해 정치적 입장을 피력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에 몇 자 토를 달아봅니다.
일단 '정치'라고 하는 단어부터 '권력과 투쟁'의 산유물이고, 그렇게 또 '이어지고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에 '성직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런 이슈를 다루어서 '덕(德)'이 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같은 생각이 있어 얻는 것이 있다면, 색깔이 다르다고 해서 잃을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해 정치적 신념을 갖는 것이야 개인적인 일로 치부할 수 있으나, 신앙적 공인으로 '성직자'가 자신의 위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통해 그 신념을 표출하는 것은 자기 위치를 망각한 '외도'라고 봐야 합니다.
먼저 이런 질문을 하나 해보려고 합니다. "'정치'가 신앙적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정치'는 신앙적일 수도 없고, 성경적일 수도 없습니다.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정치'는 '결과'만을 지향하고 모든 것을 '수단'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서두에 피력한 대로 '투쟁'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정치(政治)'라고 하는 단어가 주는 좋은 의미나 '신학적 이론이나 이즘(ism)'의 무거운 이야기는 삼가하겠습니다. 그저 종교인이요, 성직자로서 부르신 절대자를 '롤모델(role model)'로 생각해 보아도 정치참여의 문제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부르신 분이 '예수님'이시며, 그분을 따르는 본을 보여주신 분들이 '사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어디에도 정치에 참여하신 모습은 없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모습에서 정치적 이론을 찾아 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고무적인 일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직접적 정치에 참여를 원하셨다면 혁명당을 이끄시거나, 정당을 구성하셨거나, 로마정부에 대응할 뭔가를 구성하시고 정권을 잡기 위한 '여우 짓'(헤롯)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와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대에 와서 특정 '종교의 힘'을 얻어보려고 '기독교적 정치형태'니 뭐니 말을 만들어 이야기들 하지만 결단코 성경적으로 정치 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압니다.
'정치'란 사회나 공동체 속에 '이상'을 품는 것입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투쟁과 야합'이 정당화될 수 있는 곳입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정치적 이념으로 천국 강령인 '산상수훈(마5-7)'을 준수할 수 있을까요? 이 땅 위에서는 결단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제자들이었던 '베드로'나 '바울'의 모습 속에서도 사회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행동했다는 문헌은 없습니다. 물론 그 이후 '칼빈'이나 '바르트' 같은 신학자들에 의하여 기독교적 정치 형태에 대한 모습들이 다뤄지고, 중세나 근대 들어 종교가 정치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종교'와 '정치'는 어느 면에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여러 가지 복합 함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구성 자체에서도 그렇습니다. 정치인이 좌익이든 우익이든 종교인일 수 있고, 종교인이 정치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복합적 형태를 보인다고 해서 모두가 두 가지를 다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성직자'들에게는 말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남을 가르치는 자의 모습'은 '배나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신부'이건 '목회자'건 '성직'을 수행한다는 것은 특별한 것입니다. 구별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 행하는 '일과 자리'가 특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르심(Calling)'을 받으면 일생 한 가지 일에 헌신하기로 작정하고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 길은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가는 길이고, 그분이 행하신 일을 따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상처 입은 영혼, 방황하는 영혼들을 복음으로 싸매는 일도 어려운 일인데, 정치에 직접 행동으로 참여하겠다는 것은 부르심을 포기하겠다는 것이거나, 부르심을 잘 못 받은 경우입니다. 정치가로 부름을 받았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분명 '종교'가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참여해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하고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의 사회화'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교회'나 '성직자'가 직접적 행동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과 그 구성원들을 통하여 신앙의 기반 위에 바르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참여라면 '간접적 참여'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지켜지지 못한다면, 언제나 신앙의 모델이 되어주신 예수님과 그의 몸된 교회가 세상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의 이런 말씀이 생각납니다.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한 가지 만이라도 족하니라...' 물론 이 말씀에 본 의미는 다르겠습니다만 성직을 수행한다는 분들이 정치적인 일에 행동하기 앞서 이 말씀이 어떻게 적용돼야 할까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ki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