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관상>이 흥행하면서 <무한도전> 등 ‘관상’을 소재로 한 TV 프로그램들도 다수 방영되고 있다. 물론 화제가 된 영화의 내용을 잠시나마 차용한 것이지만, 그 만큼 관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영화의 흥행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관상(觀相)은 사전에서 “상을 보아 운명이나 재수를 판단하여 미래에 닥쳐올 흉사를 예방하고 복을 부르려는 점법(占法)의 하나”로 정의되고 있다. 흔히 얼굴만이 그 대상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깊이 들어가면 손·발의 모양이나 자세, 행동 심지어 말투나 눈빛까지 포함된다.
재미있는 것은 관상도 점(占)의 일종이긴 하나, 점이 사람의 생년월일 등 주로 변하지 않는 것을 토대로 앞일을 예측하는 것과 달리, 관상은 세월에 따라 다소나마 변하는 ‘생김새’를 그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식생활의 변화 등으로 체격이 변하면 그에 따라 관상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게 여러 관상가들의 견해다.
요즘 한국에서 불고 있는 ‘성형 바람’을, 관상의 이런 ‘가변성’을 언급하며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관상학적으로 매우 좋지 않은 지금의 얼굴을 뜯어 고쳐, 좋은 관상이 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 성형을 감행하는 이들 중 일부는 이 같은 이유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관상 역시 지금 알 수 없는 미래를 미리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그 같은 불안과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선택하는 것들 중 하나라는 점에서 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이런 관상이나 점이 지극히 ‘무속적’이라는 데 있다. 또 인생을 개척의 대상이 아닌 우연과 요행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위험성 또한 가지고 있다.
관상을 설명한 한 백과사전조차 “인상을 보는 것이 심상을 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마음의 상태와 변화는 물론 인상에 다소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마음은 깨닫고 반성하고 느끼고 다듬을 수 있는 것이기에 평소 선한 마음을 일으키고 바로잡아 나간다면, 그 사람의 삶을 능히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사무엘상 16:7)는 말씀을 읽었고 또 그것을 믿는 기독교인들이라면, ‘외모’를 보고 사람의 현재나 미래를 판단하는 관상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
산정현교회 김관선 목사는 관상에 대해 “사람의 운명이 관상에 의해 결정된다면 애써 노력하며 살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며 “관상에 매달리는 것처럼 무모하고 부질없는 짓이 또 있을까 싶다. 타고난 관상보다 내 마음 속에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심고 그것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자세가 인생을 좌우한다는 것”이라며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은 얼굴도 달라질 것이고, 그것이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 것이다. 그것이 성경적 원리”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