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공격하며 몽니를 부리는 통합 진보당의 이정희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어 반항하는 10대 딸자식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녀는 지난 대선과정에 있었던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자신은 단지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나온 저격수임을 자처하며 박후보 면전에서 두 눈 부릅뜨고 따져대고 있었다.
그녀에 의하면 지금까지 대한민국이라는 자식에게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은 밤낮없이 공부 열심히 하고 부지런 하라며 으름장만 놓아대던 폭력적 가장이었지 진정 자식을 위해서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며 사랑한번 제대로 해준 적이 있었느냐며 박근혜 후보 역시 그 아버지에 그 딸일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펼치고 있었다. 마치 철부지 자식이 기둥뿌리 뽑아가며 공부시켜 놓았더니 아버지가 나에게 해준 것이 뭐가 있냐며 따져대는 형국과 같은 모양새였다.
최근 그녀는 정부의 통진당 해산을 위한 헌재소원을 놓고 또다시 발끈하며 서울역 광장에서 촛불시위를 벌이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신공주니 박근혜씨니 막말을 하면서 또 다시 대들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되는 일이 없어서 분한 마음인데 왜 자꾸만 모든 것을 자신들의 잘못으로만 몰아세우는지 모르겠다며 막 나가는 10대의 반항아들처럼 통진당의원들을 앞세워 머리 박박 밀어가며 막장 난장판도 불사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식이 이정도 되면 말릴 수 있는 부모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실, 한국사회에서의 정치 사회적 갈등의 뿌리에는 가정에서 부터 시작되고 있는 부모 자식 간의 갈등으로 부터 형성되는 미움과 적대감이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는 것이라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대화가 단절이 되거나 느낌이나 생각 등이 어른들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억압될 때 자녀는 훗날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게 되며 자신과 다른 견해에 대해서는 쉽게 분노해 하는 흑백논리의 경직된 사고방식으로 성장하게 된다.
우리의 삶속에서 아버지는 밖에서 열심히 일만하고 돈만 벌어다 주면 책임 다하는 거라고 믿어왔던 사회적 관념 속에서 불만족의 어머니가 자식들에 집착하며 그들의 삶에 깊게 간섭하고 통제할 때 자식들은 가정 공동체 안에서 형성되어야 할 사랑과 협력,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신뢰감등이 떨어지게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가정안에서의 아버지역할의 실종과 자식의 미래에 대한 강박 심리가 해를 거듭할수록 더해만 가는 한국적 상황에서 향후 한국사회가 더욱 불안해 보이는 것은 바로 억압된 자녀들의 심리가 만들어 내는 우리 사회의 불협화음의 악순환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던가? 국정원 댓글 사건과 통진당 해산에 반박하며 민주당은 또다시 정부여당에 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대화와 타협보다는 그들의 생리에 부합하는 국민선동과 여론몰이를 통해서 박근혜 정권을 굴복하려 혈안이 되어있다. 국민 누가 보아도 지금의 한국정부를 반민주니, 유신독재니 하는 그들의 주장에 수긍을 할까? 현재의 한국사회의 갈등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 부모와 자식 간의 노여움과 원망의 감정들에 익숙해져있는 정치 당사자들이 현실에 대한 왜곡된 해석을 낳고 있는 그들이야 말로 반 민주정치의 미성숙함을 보여주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의 우리들의 정서로는 오늘 한국의 정치현안이 대화와 타협 그리고 대화 여야 간의 물밑 접촉에 의한 큰 틀의 거래(Deal)라는 정치적 해결과정을 가능케 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여유를 배워야 할 것 같다. 마치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미 어긋나고 있는 자식에게 부모는 일방적으로 '싸가지 없는 자식'이라며 정나미를 떨쳐 버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그 책임의 소재를 되짚어 보며 부모로서의 도량을 보여주는 노력을 할 때 자식은 자식대로 이 세상에서 제부모와 제집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우리의 정치권 역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조금 더 헤아리는 여유와 도량을 배워야 할 때이다.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한 치의 양보 없이 색깔론과 독재타도를 외치며 분통을 터뜨릴 때 좋아라 할 사람은 김정은일 것이며 대한민국은 또다시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했던 북한의 도발을 또다시 재현하는 그런 비극 속으로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한국사회 도처에 깔려있음을 보고 있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