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사랑 CROSS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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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구 | 한알의밀알 | 184쪽

전 세계의 다양한 십자가를 사진으로 보면서 은혜를 누리는 책이기에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저자의 십자가 사랑에 대한 마음을 간절히 느꼈기에 글로 기록해 보려 합니다. 송병구 목사님은 한국 농촌교회에서 9년 동안 목회하다, 1994년 독일에서 살게 된 것을 계기로 십자가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표현하네요.

"처음 십자가를 구했을 때, 그 뜨거움이 생생합니다. 십자가를 수집하려는 마음을 품고 눈을 씻고 찾아다니다 여섯 달 만에 겨우 발견했습니다. 1994년 겨울, 제가 살던 보쿰(Bochum)시 성탄 장터였습니다. 내가 가진 동전 몇 푼으로도 살 수 있을 만큼 값이 쌌습니다. 손에 쥘 만한 크기의 주석 십자가에는 예수님과 두 제자가 앉아 있는데 이런 말씀이 쓰여 있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Ich bin bei euch)'.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릅니다. 늘 손에 쥐고 그 질감을 느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했습니다. 그렇게 십자가를 마음에 두고 십수 년 궁리하다 보니, 십자가에도 뿌리와 역사가 있고 민족과 지역마다 고유한 얼굴이 담겨 있으며, 깊은 신심과 영성을 상징화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계교회가 얼마나 다양하고, 또 하나로 일치를 이루고 있는지도 배웠습니다."

정말 이 느낌을 강하게 받은 십자가가 있습니다. 페루의 '인디오 십자가'입니다. 남아메리카의 키 작은 14명의 인디오들이 꼭 초코바처럼 생긴 십자가를 함께 지고 있는데, '가난하고 배고픈 그들에게 십자가는 정말 초코바가 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맑은 눈망울이지만 가난해 보이는 그들, 하지만 함께 의지하며 십자가를 지고 있는 모습이 무척 귀합니다. 가난하므로 더불어 갈 수 있으니, 그들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눅 6:20-21)"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인디오 십자가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저자는 16년 동안 십자가를 연구하고 수집했으며, 현재 '십자가 갤러리(Cross Gallery)'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의 관심은 잘 치장된 '거룩한 성물'이 아니라, 삶 속에 뿌리내린 '생활 문화'의 십자가입니다. 거룩하게 걸려 있는 형이상학적 십자가가 아니고, 귀금속으로 표현되는 화려한 십자가도 아니며, 삶 속에 역사하시는 성육신하신 십자가를 기대한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 총알의 탄피로 만든 작은 십자가를 소개합니다. '평화 십자가'라고 표현하네요. 녹슨 탄피의 윗부분(살을 파고드는 살상하는 부분이죠)을 자르고 펼쳐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 겁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이르자 형이 집행되었다. 그의 머리에는 가시관을 씌웠고, 양손과 양발은 못 박혔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는 예수님에게 사람들은 조롱을 퍼부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대신하여 하늘 아버지께 용서를 비셨다. 예수님의 무기는 총과 칼이 아니라 십자가, 바로 사랑이었다."

또 저자는 십자가가 골고다 사건만이 아니라고 고백하며, 십자가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본인의 묵상 내용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한 장(chapter)이 끝날 때마다 그 주제에 대한 글을 남겼는데, 짧지만 참 깊은 묵상입니다. 저도 이 책에 사진으로 소개된 수많은 십자가를 보며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하심이 십자가를 통해 표현되었구나!'라고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Cross 모형의 십자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 알자스 지방에는 '일자형 십자가'가 있는데, 중심에 아기 예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표현하는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도자기 십자가'도 있는데, 갓난아기가 양과 나귀 그리고 꽃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베들레헴의 아기 예수를 표현한 겁니다. 그리고 북아프리카 이집트에 뿌리내린 콥트교회에는 '가죽매듭 십자가'가 있는데, 십자가 끝에 세 개의 동심원이 있습니다. 콥트교회의 삼위일체 신앙고백입니다. 검정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룬 가죽 십자가 목걸이인데, 남자인 제가 걸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예쁩니다.

동방정교회의 유산인 '비잔틴 십자가'는 천 년 묵은 이끼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뎌왔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독일 슈바르츠발트 지역에는 '팔 없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신성모독의 느낌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잔잔한 웃음을 짓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에 저절로 경의가 표현됩니다. 폴란드 비엘리츠카에는 암염 광산에서 생산된 소금으로 만든 '소금 십자가'가 있습니다. 정말 눈부신 크리스털로 만든 것처럼 아름답습니다. 옛 동독 지역 아이히스펠트 분단박물관에서 구입한 십자가는 철조망 조각 5개로 만들었습니다. '화해 십자가'라고 이름을 붙였네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는 예수님 말씀이 통일 독일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전해져 옵니다. 탄자니아에서는 흑단나무로 '검은 예수 십자가'를 표현했습니다. 고통 속에 살던 흑인들에게 예수님은 위로와 소망이 되었으며, 그들과 하나 되기 위해 검은 예수가 되었다는 것도 참 감동적입니다.

글을 쓸수록 아쉽습니다. 컬러 사진으로 십자가를 봐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56개의 십자가가 어떤 복음을 들려주는지 직접 경험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는 성경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많이 남겼습니다. 스데반의 죽음, 돌아온 탕자, 예수님의 재판, 십자가 처형 등. 흥미로운 것은 모든 그림에 자신을 구경꾼으로 그려 넣었다는 건데, 그가 고백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나도 거기 있었어요!"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가장 깊이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십자가 아래'임을 고백하며 렘브란트는 그 자리에 선 것입니다.

우리도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는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며, 어쩌다 한 번 지고 마는 십자가가 아니라, "날마다" 반복해서 행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되면 좋겠습니다.

새벽기도회 설교를 마친 후, 항상 예배당 정면에 있는 십자가 아래에 방석을 깔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마치고 일어날 때마다 그 십자가를 잠시 응시하며 묵상하고 성전을 나옵니다. "십자가의 보혈이 오늘도 나를, 우리 성도들을,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인도하옵소서."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부디 우리 모두에게 '모형의 십자가'가 아닌, 살아있는 '삶의 십자가'로 임재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늘뜻섬김지기 이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