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 넘게 미국을 뒤흔들어 놓았던 워싱턴의 정치게임이 일단 휴전상태로 들어갔다.정부의 새해예산에서 의료개혁에 관한 부분을 인정할 수 없었던 공화당의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과 대통령의 대결이었다. 공화당은 이미 3년 전에 결정이 되어서 시행을 앞두고 있었던 의료개혁법을 예산안 인준과 결부시켜서 힘겨루기를 하며 불필요한 소모전을 펼쳤다. 연방정부폐쇄와 국가부도 가능성이라는 듣기만해도 엄청난 말들이 연일 미디어에서 흘러 나왔다. 2주동안 정부의 폐쇄로 잃은 금전적인 손실만 240억 달러가 넘고, 4분기의 경제성장율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며, 국제사회에서 실추된 신용은 돈으로 쉽게 환산이 불가능하다. 공화당은 협상의 여지를 조금도 허용하지 않았던 대통령을 고집불통이라고 몰아 세웠지만, 결국은 대통령의 한판승으로 끝났다. 그러나 아직 경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 시작이다.
소위 오바마케어라고 알려진 미국의 의료보험개혁은 오랜 진통끝에 지난 2010년 3월에 결정되었다. 당시 상하원을 모두 주도하고 있던 민주당의 정치적인 승리였고, 미국 역사상 어떤 대통령도 이루어내지 못한 전국민 의료보험의 시작을 알리는 일이었다. 1933년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회보장 제도를 시작하면서 사회주의자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공황 (The Great Depression)을 겪으면서 경제적인 약자들에 대한 사회적으로 인식이 바뀌었던 절묘한 시점에 이루어진 일이다. 사회보장이란 지금은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 되어 버렸지만 당시로서는 누구도 쉽게 받아 들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의료보험을 강제적으로 전국민에게 확대하려는 노력 또한 이에 버금가는 커다란 사건임이 분명하다. 그 결정이 대공황 이후로 경제적인 충격이 가장 컸던 지난 대경기침체 (The Great Recession)가 끝난 이듬해인 2010에 이루어졌다는 사실 또한 우연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바마케어는 법으로 정해진 이후에도13개가 넘는 주에서 제출한 위헌소송을 이겨내면서 대법원으로부터 합헌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이달에는 일시적인 정부폐쇄를 겪었고, 국가부도라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살아남는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계획대로라면 4천만이 넘는 무보험자들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게된다. 세계적으로 의료부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진화된 시설과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경쟁력이 37위에 머물고 있는 미국의 불명예를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법대로라면 내년 1월 1일까지는 미국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과 미국국민은 의료보험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 3월 1일이 지나면 벌금을 내야한다. 이미 지난 주말까지 2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입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시행된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한순간에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버리는 것이 좋겠다. 자발적으로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경우에 정부가 벌금을 부과하는 일이 비록 합헌이라는 판정을 받기는 했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새로운 법을 따를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는다. 취지와 상관없이 지켜지지 않는 법이 사장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새로운 법에 익숙해지고 법을 집행하는 데에는 항상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지만, 미국이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는 더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비싼 의료비의 문제이다. 미국의 의료비는 유럽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에 비해서 여전히 두 배이상 높다. 전국민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누리는 일은 중요하지만, 어떤 수준의 보험료를 내는지는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백악관의 발표에 따르면 10명중에 6명은 매월 $100이하의 보험료를 내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의료보험에 가입하는 일은 마치 자동차를 구입하거나 케이블 TV를 신청하는 일과도 비슷하다. TV광고에 나오는 자동차의 가격만을 지불하고 차를 구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선택사항때문이다. 매월 $20도 안된다는 광고에 넘어가서 케이블을 신청하려다 보면 정작 보고 싶은 채널을 추가해야하는 옵션을 만나게 된다. 결국 2-3배가 넘는 플랜을 선택하게 되곤 한다. 보험료는 얼마나 많은 의사나 병원을 선택할 지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 기본만으로는 유명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기는 어렵다.
전국민의료보험의 기본적인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비싼 의료비를 개선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직까지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이고,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기만 한다. 보험가입자의 수는 늘어나지만 의료비가 개선되고 있다는 소식은 아직은 어디서도 들을 수가 없다.
칼럼리스트 하인혁 교수는 현재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Western Carolina University에서 경제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Lifeway Church에서 안수집사로 섬기는 신앙인이기도 하다.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991년도에 미국에 건너와 미네소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하인혁 교수는 기독일보에 연재하는 <신앙과경제> 칼럼을 통해 성경을 바탕으로 신앙인으로써 마땅히 가져야 할 올바른 경제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해 나가야 하는지를 풀어보려고 한다. 그의 주요연구 분야는 지역경제발전과 공간계량경제학이다. 칼럼에 문의나 신앙과 관련된 경제에 대한 궁금증은 iha@wcu.edu로 문의할 수 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