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 추적자들
브룩 윌렌스키 랜포드 | 푸른지식 | 416쪽
"당신에게 '에덴'은 어떤 의미인가?"
<에덴 추적자들(푸른지식)>은 성경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믿음의 뿌리'에 대한 물음일 수도 있고, '과학의 시대' 또는 '성경 비평가들의 시대'에 신앙의 자리 또는 의미를 찾는 탐구일 수도 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인들의 발칙한 에덴 탐험기'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곳'으로 기독교인들에게 잘 알려진 '에덴동산'을 찾아나선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이 '에덴 추적자들'은 지난주 주요 일간지에 일제히 소개됐을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추적자들'은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1859년 이후 '과학'의 힘을 빌어 에덴을 찾아 나섰다. 고고학과 지리학, 역사학도 동원됐다. '과학'으로 '신앙'을 증명하려 한 셈인데, 추적자들의 목적이 각자 달랐기 때문에 '그들의 에덴'은 북극에 나타났다가 당시 신대륙이었던 미국 한복판이 되기도 했고, 중국의 한 분지나 페르시아만 바다 밑이라는 주장도 등장했다. 저자는 에덴 추적자들이 "저마다 에덴을 찾아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독일 베를린대 델리치 교수는 성경이 수메르 신화에서 직접적 영향을 받았다며 모세를 '표절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나일강 아스완댐을 설계한 당대 최고의 관개 전문가이자 건축기사였던 영국의 윌리엄 윌콕스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사업을 진행하며 '셈족의 에덴동산(북쪽)'과 '수메르의 에덴동산(남쪽)', 에덴이 두 곳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법률가 캘러웨이는 플로리다 북서쪽 포도밭 그늘에서 에덴을 상상했고, 노르웨이의 탐험가 토르 헤위에르달은 에덴 찾기에 평생을 바쳤다.
다윈은 1871년 <인간의 유래>에서 "아마도 우리의 초기 조상은 그 어느 곳보다 아프리카 대륙에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고, 아프리카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같은 해에 아프리카에 위치한 나일강 수원(水原) 잠비아 방웨울루호가 에덴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해에 비슷한 주장을 정반대의 의미로 선언한 것이다.
이같은 '무모한' 시도가 계속되는 것은 에덴에서 흘러나와 네 곳으로 갈라진 강줄기들 중 '비손'과 '기혼'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넷째 강줄기인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는 중동 지역으로 파악되고 있어서, '과학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 요세푸스로부터 아우구스티누스, 존 칼빈 등 신학자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창세기 등 성경 곳곳을 뒤져가며 정확한 에덴의 위치를 추적했다.
이렇듯 다양한 '에덴 추적자들'의 기록을 추적해 한데 모은 저자는 "(21세기에도) 에덴 찾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에덴에 관한 생각은 다윈의 시대를 지나고도 훨씬 오랫동안 흘러내렸고, 앞으로도 20세기를 넘어 계속되리라는 것. 그는 에덴이 이끄는 곳으로 계속 걸어가볼 생각이라고 한다. "그 미지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기이하지만 진실하고 절실한 마음을 만나게 될 테니까."
신학자들에게조차 '에덴의 기억' 따위는 사라지고 있지만, 그 '에덴의 동쪽'에서는 많은 이들이 잃어버린 그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 순수한 신앙을 가진 이들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가 깨어짐으로 말미암은, '실낙원(失樂園)'의 상처로 괴로워한다.
어떤 의미에서 '에덴 찾기'는 일종의 이상향에 대한 갈망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깨어진 세상에서 힘겹게 살아내느라 신앙인들이 어느새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에 대한 향수를, 이들은 GPS와 내비게이션을 들이대며 추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순수함이 아닌, 자신만의 목적에 따라 에덴을 찾아내고 규정 지으려는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