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해본 말일 게다. "우리는 코드가 너무 안 맞아!"
사실 그렇다. 우린 너무 다르다. 성격도 다르고, 체질도 다르고, 성장 배경도 다르다. 고향도 다르고, 학벌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그러니 이렇게 다른 사람들끼리 코드가 잘 맞는다면, 사실은 그게 기적이다.
우리 부부도 많이 다르다. 치약을 짤 때 다른 건 기본이다. 나는 알람 소리가 울리면 즉각 일어난다. 그런데 아내는 미적거린다. 적당하게 뜸을 들이면서 일어나는 게 건강에 좋단다. 내가 양복을 걸 때와 아내가 내 양복을 받아서 걸어놓을 때 방향이 다르다. 아내가 걸어놓은 양복을 꺼낼 때면 어색하고 불편함도 살짝 느낀다. 나는 음식을 빨리 먹는 편이다. 그런데 아내는 제발 빨리 먹지 말라고 한다. 국이 있으면 나는 말아서 후딱 해치운다. 그런 나를 보고 아내는 말한다. '당신은 머슴밥을 먹는다'고.
서로 코드가 안 맞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알고 있는가? 코드가 서로 잘 안 맞는 건 지극히 정상이라는 사실을. 정상을 정상으로 보면 된다. 가자미 눈으로 이상하게 쳐다볼 필요 없다. '인간이 왜 저래'라고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사람은 나를 보고 그렇게 말할 거니까.
물론 서로 코드가 맞지 않는 것은 힘든 일이다. 서로 코드가 맞지 않다 보니 티격태격하고 으르렁 거리며 싸운다. 이것 때문에 함께 살아가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지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위험할 수 있다. 코드가 서로 잘 맞는다고 생각해서 결혼했는데, 살아보니 서로 코드가 맞지 않아서 너무 힘들어하는 것을 본다. 코드가 맞지 않아서 서로 갈등하다 보면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어느 토요일, 결혼식이 있어 성도들과 함께 결혼식장을 가고 있었다.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느 집사님이 말했다. "우리 딸은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올 때마다 슬리퍼를 그냥 벗어두고 나오는데, 물이 빠지게 좀 걸쳐놓고 나오면 얼마나 좋아요?" 그러자 옆에 있는 사람들이 말했다. "뭐 그렇게 할 것까진 없다. 어떤 아이들이 그래?" 그러자 그 집사님이 대꾸했다. "아니, 그게 뭐가 어렵다고? 이해를 못하겠어." 나도 한 마디 했다. "집사님, 그렇게 한다고 고쳐집디까? 살아보니 이러나저러나 별 것 아니던데." 옆에 있던 부목사님이 말했다. "그래서 저는 욕실에 갈 때 슬리퍼도 신지 않고 들어가잖아요...."
코드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려니 얼마나 힘든가?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코드를 서로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코드 맞추기에 헌신하지 않는 게 문제이다. 자기 코드만 고집하는 게 문제다.
아무리 서로 달라도, 코드만 잘 맞추어 가면 문제 될 건 없다. 상대방의 코드를 인정해 주면 된다. 자기 입장만 주장하게 되면 관계는 깨어지고 공동체는 힘들게 된다. 코드를 맞추려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주어야 한다. 자기한테만 맞추라고 한다면 더불어 살아갈 수가 없다.
코드 맞추기를 할 때 기억할 사실이 있다.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코드를 맞추는 게 원칙이라는 것이다. 양인 우리가 목자인 예수님에게 맞추는 게 정석이다. 회사에서 종업원이 업주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는 게 좋다.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맞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조직원이 조직에 맞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를 유지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서로 다른 코드를 맞추어 가는 데 아주 좋은 비책이 있다. 서로 예수님에게 코드를 맞추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에 모든 초점을 맞추었듯이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된다. 사람의 종이 되어 친히 작은 자가 되어 사람들을 섬기신 예수님처럼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예수님 스스로 그렇게 사셨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새 계명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면 된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우린 코드가 잘 맞는다'고 고백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코드에 맞추려고 애쓰지 말고 서로 코드를 맞추기 위해 공통분모인 예수님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된다.
사실 부부가 자기 마음대로 하려니 문제가 되는 게 아닌가? 직장에서 자기코드대로만 하려고 하니 직장생활이 어렵지 않은가? '난 직장 체질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웃기는 말 아닌가? 세상에 직장 체질이 어디 있는가? 자기 코드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직장생활을 원만히 하기 위해 자기코드를 조율하면서 살 뿐이다.
목사가 자기 코드만 고집하니 교회가 힘들 수 있다. 자기 코드만 주장하는 장로 때문에 당회가 힘든 경우도 많다. 왜 분쟁하고 다투는가? 코드를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코드를 조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코드를 맞추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제자란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자가 아니다. 자기 색깔이 있어도 예수님의 색깔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자기 코드가 있어도 예수님의 코드에 맞추며 살아야 한다.
코드를 맞추며 살고 싶은가?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정조준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금하면 아무리 원하는 것이어도 포기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라고 하면 아무리 싫어도 해야 한다. 내 코드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진리 가운데로 나아가는 자이다. 성령께서 탄식하는 음성을 듣고 코드를 조정할 줄 알아야 한다. 성령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실 때 주춤하지 말고 순종해야 한다. 성령은 인격적인 분이시다. 내 안에 계시면서 내 삶을 간섭하신다. 성령의 간섭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코드를 맞추며 살 수 있다.
그래서 코드가 달라서 힘들 때가 있다. 속상해서 화풀이할 건가? 짜증 부리고 앙탈할 것인가? 그래봐야 관계만 멀어질 뿐이다. 힘들 때면 오히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기도하면 된다. 코드를 잘 조정해 가는 지혜를 주실 것이다. 인내할 수 있는 마음도 부어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