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른들은 선하게 살기를 권했다. "선으로 이기자(以善勝之·이선승지)"는 논산 대건중·고등학교의 교훈이다. 성경에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항상 선을 따르라(살전 5:15)"고 가르치고 있다. 동양에서도 '積善之家 必有餘慶(적선지가 필유여경·착하게 사는 사람은 반드시 기쁨이 넘친다)'을 가르쳤고, '德不孤 必有隣(덕불고 필유린·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친구가 있기 마련이다)'을 권했다. '덕'(德)을 글자로 풀이하면 '마음을 얻는다(得必·득필)'란 뜻이다. 상대방의 마음과 사랑을 얻는 게 잘 사는 것이다. 도덕의 총론은 항상 권선징악(勸善懲惡)으로 요약된다.
동양고전 「명심보감」도 계선편(繼善篇)부터 시작된다. 첫 구절이 공자의 "爲善者 天報之以福 爲不善者 天報之以禍(위선자 천보지이복 위부선자 천보지이화·선을 행하는 자는 하늘이 돌보아주고, 악한 일을 하는 자는 하늘이 벌을 내린다)"로 시작된다. 太公(태공)의 "見善如渴 聞惡如聾(견선여갈 문악여롱·선을 듣거든 목마른 사람처럼 대하고, 악을 듣거든 귀머거리 같이 대하라)"도 유명한 구절이다.
예수님은 이 원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음의 관문을 거치게 돼 있고, 죽은 뒤에는 선악간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 그 결과, 천국과 지옥으로 분리되어 영원히 살 것이다. 순간에서 영원으로 가는데, 그 영원은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되어있다. 천국과 지옥을 '양과 염소'로 비유해 놓았다. 양과 염소는 비슷하지만 서로 다르다. 양이 되어 천국에서 영생할 것인가? 염소가 되어 지옥에서 영생할 것인가? 이는 매우 중요한 선택이다. 이 세상 출세나 재산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정말로 피차 오고갈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인 것이다. 분명히 인식하고 철저히 준비해야 할 일이다. '설마'가 통하지 않는 인생일대 전환점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천국시민이 되기 위한 선행을 매우 구체적으로 일러 주셨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①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②목말라 할 때 마실 것을 주고 ③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해 주고 ④헐벗었을 때 입을 옷을 주고 ⑤병들거나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가 위로해 주라는 것이다(마 25:31-46).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에게 한 것이라 일러 주었다. 교회가 왜 존재하는가. 신앙인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 하신 일을 대신 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예수님이 계시다면 누구를 찾아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일을 하셨을까? 생각해 그 일을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독일의 한 교회에서 교인총회가 열렸다. 교회 앞 정원에 세워놓은 예수님의 동상이 폭격을 맞아 한쪽 팔과 다른 쪽 다리가 잘려 나갔기에 동상 복원을 의논하는 자리였다. 한 어린이가 부러진 팔, 다리를 그대로 두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온 교인이 그 동상을 볼 때마다 예수님의 없어진 팔과 다리가 되어 예수님의 역할을 대신 감당하자고 말했다. 그래서 부러진 동상 앞에다 "예수님은 팔과 다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에겐 팔과 다리가 있습니다"라고 써 놓았다.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 말씀을 배운 후, 흩어져서는 작은 예수로 살아가자. 우리 주변의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어 안고 그들을 아끼고 섬기며 시간과 사랑과 물질을 나누어 주자. 그것이 곧 신앙인의 삶이요, 교회가 할 일이다.
톨스토이의 단편 중 한 부분을 소개한다. "한 곳에 예수님을 만나보기 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구두수선공 할아버지였다. 어느 날 꿈 속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내일 찾아갈 테니 창밖을 보며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할아버지는 매우 기뻐서 아침 일찍 일어나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놓고 기다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다. 그런데 추운 날씨에 눈을 쓸고 있는 청소부 할아버지가 보여 그를 불러 난로 옆에 앉게 하고 따뜻한 차와 빵을 대접했다. 잠시 후 어린아이를 안고 추위에 떨고 있는 한 여인에게도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고 자기의 외투를 입혀 보냈다. 그리고 사과를 훔치고 쫓겨 가던 배고픈 아이를 불러 훔친 사과값을 대신 내주고, 그 사과를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일이 있기까지도 정작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다.
그날 밤, 그 할아버지는 꿈속에서 다시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 오신다고 하시더니 왜 오시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예수님께서는 '나는 오늘 네 집에 세 번이나 방문했고, 그때마다 따뜻한 대접을 받았다. 네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을 확인했다. 영원한 복을 누리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도 우리 앞에 예수님은 여러 모습으로 찾아오신다. "Whenever you did one of these things to someone overlooked or ignored, that was me-you did it to me(보잘것없는 어느 사람에게 한 일, 곧 너희가 이 형제들 중 가잘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한 일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마 25:40)". 우리의 삶 속에서 명심해야 할 예수님의 말씀이다.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