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時間)속에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지름길 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시간이 고통(Time is so painful)으로 느껴져 힘든 삶의 여정을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삶 속에서 주어지는 평안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데 그 이유는 삶에서 부닥치는 다양한 환경과 그것을 바라보는 삶의 가치관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현재 나에게 주어지는 삶의 고통이 다가올 미래를 향해 축복과 기회로 전환될 것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현실에서 주어지는 삶의 갈등이 너무나 큰 장애로 여겨 불안증을 갖게 된다.
이러한 불안증은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오게 되는데 그것이 사람의 인체에 악영향을 주어 불면증, 고혈압, 소화 불량 및 위궤양을 일으키게 하고, 심하면 심장 질환을 일으켜 병원 신세를 져야만 하기도 한다. 이것은 고통을 경험하지 아니한 사람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이러한 삶의 아픔을 경험하고 살아간다.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데, 그러한 사람들은 마음의 고통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어야 하고 위로 받아야 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아야 한다.
특별히 가정에서 어느 구성원이 삶에서 오는 심한 고통으로 인해 아파한다면 그것은 그 구성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 전체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암세포와 같은 것이기에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
얼마 전에 이민목회의 현장에서 교회의 문제로 인해 마음속에 심한 갈등하며 사역을 하고 있는 어느 목사님 부부를 초대해 식사를 함께 했다. 지난날 필자도 그런 동일한 아픔을 겪었기에 그 분들의 아픔을 들어주고 위로하기 위한 초대한 것이었다.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어떤 집단을 주도할 수 있는 권력인 헤게모니"에 의한 갈등이다. 그리고 그것의 중심에는 '돈, 명예 와 권력'이 항상 자리 잡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가 교회 안에도 그대로 자리 잡아 교인들과 담임목사와 심한 갈등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교회 안에 이러한 갈등구조는 성도와 목사간의 신뢰관계를 망가지게 할 뿐 아니라 교회를 분열하게 하고 종국에는 서로가 마음에 큰 상처를 준다. 더불어 평생을 목회자와 성도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이것은 사단이 바라는 계획이며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당장에 사단이 보이지 않고 나를 괴롭히고 대적하는 사람의 힘의 세력이 크게 보이기에 그것에 쉽게 분노하고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신앙심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게 된다. 그래서 살이 빠지고 얼굴에는 어두움의 그늘이 가득하고 마음에는 미움의 쓴 뿌리가 자리 잡게 된다.
사단이 더욱더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교회의 리더인 목회자의 마음을 갈등하게 하고 지치게 함으로 종국에는 사역자체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단은 교회가 바로 서가는 것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심하기에 교회에 늘 혼란을 일으키려고 한다. 이것은 목회 현장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며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현상이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아픔을 겪고 있는 목사님 부부와 대화를 하면서 '하나님의 목적하심'과 '마음의 여유'에 대한 대화를 통해 동병상련(同病相憐)을 갖게 되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자에게 조그마한 쉼의 공간과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자연에서 느끼는 한가로움의 여유를 바라보는 그 이상의 축복이라고 본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삶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바다에 폭풍이 아무리 심하다 할지라도 삼일을 넘지 않으며 하늘에 먹구름이 많을 지라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빛을 바라볼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폭풍이 불어오는 며칠, 또는 너무나 무섭게 느껴지거나 짙은 먹구름으로 희망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시적인 어려움의 터널을 쉽게 빠져 나가지 못하고 '좌절과 절망'속에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곧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본다.
"독일의 한 탄광에서 붕괴가 발생했다. 10명의 광부가 모두 갱도 안에 갇혀 외부와 연락이 끊겼다. 광부들은 시간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 그 중 유일하게 시계를 찬 광부가 있었다. 그는 계속 시계를 들여다보며 불안과 초조에 시달렸다. 며칠이 지난 후 구조대원들이 광부들을 구출했다. 그러데 단 한 사람만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희생자는 시계를 찬 광부였다. 그는 죽음의 시간을 세고 있었다. 시간에 대해 너무 집착하거나 성격이 급한 사람은 건강을 잃기 쉽다."
시간에 너무나 집착하여 불행한 삶을 살았으며 마지막 비극적인 죽음을 살았던 사람을 성경에서 찾아본다면 그는 사울 왕 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베냐민 지파이었으며 기스의 아들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임금을 요구하여 사무엘이 기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세움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블레셋 군대의 위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굴과 숲에 숨어 떨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에 불안하여 제사장이 드려야 할 번제와 화목제물을 대신들에게 가져오게 하고 사무엘을 대신하여 제사를 드린 주제넘은 행동을 보였다.
또한 하나님이 "그들이 소유한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명한 것을 어기고 그들에게서 좋은 물품들과 가축들을 취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불이행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신이 떠나고, 악령이 그를 번뇌케 하도록 하나님이 그를 내버려 두었으며 사무엘이 죽은 후에 그는 엔돌에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무당굿을 통해 죽은 사무엘의 혼을 불어오도록 명하는 엄청난 과오를 범한다.
그런 그는 평생을 다윗을 시기하여 광적으로 다윗을 죽이려 하였고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과 전투하여 패전하였고, 부상이 심하여 스스로 자결한 불행한 왕이 됐다.
사울이 마음에 여유를 가지지 못해 불행하게 된 것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 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상에 집중해 자신감이 결여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지는 자신감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이사야 58:1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이 말씀과 같이 내 안에 기쁨이 없고 평안이 없다면 눈에 보이는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바라봐야 한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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