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한인장로교회 김호환 목사
(Photo : ) 시애틀 한인장로교회 김호환 목사

독일신학자 본 훼퍼(Bon Hoeffer)가 쓴 논문 중에는 "존재와 행위"(Being and Act)라고 하는 글이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행동함으로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나타낸 학문적인  글이다. 그의 글이 주는 교훈은 구원받은 기독교인이라면, 자신의 구원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커뮤니티(community)로서 교회는 멈추어져 있는 죽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단체가 아니라, 살아 움직여 행동하는 교회인 "거룩한 교제"(Sanctorum Communio)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격려함"(encourage), "서로 사랑함"(love each other) 그리고 "존경함"(respect)은 성도와 교회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신앙의 내용인 "거룩한 교제"의 핵심적인 내용이  되는 셈이다.

거룩한 교제를 내용으로 하는 교회가 지녀야 할 행동적인 가치들은 바로 격려함과 사랑함 그리고 존경함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용기(courage)를 다른 이들에게 주며(en-), 서로(each other)  사랑하고 사랑받는, 그리고 다른이들을 존경하고 또한 존경받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들의 교회의 존재 감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교회는 세상에서 상처받고, 낙심한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어야 한다. 비판과 비난 그리고 부정적인 판단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영혼을 날카로운 칼로 도려내 죽이는'촌철살인(寸鐵殺人)'과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개인적인 윤리를 강조해야만 하는 교회의 가르침에 종종 사람들은 비도덕적인 자신의 윤리적 무능함 때문에 죄의식으로 인해 자기 자괴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 교회가 회복해야할 가치는 하나님은 모든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각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시는 분이심을 외쳐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한 용기를 부여하는 일이다. 곧 격려함(encourage)이다.

그리고 사랑도 또한 교회가 행동으로 옮겨야 할 또다른 진정한 가치이다. 그러나 하나의 정체된 개념으로서 사랑은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져야만 한다. 곧 사랑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사랑해주고 또한 사랑 받을 때, 우리들의 존재의 가치가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증거를 드러내는 일이며, 또한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하나님과 같이 신이 되는 길을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주는 자가 받을 것이라"이라는 기독교의 황금률에 의해, 또한 우리 역시 사랑으로 배부를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서로 사랑함을 잃어버리면 조금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존경(respect) 역시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교회의 생명력의 원천은 서로 존경함이다. 존경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다시 한번"(re) "관심"(spect)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존경이란 오직 다시 자신 앞에 있는 상대방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는 의미이자, 자기와 악수하고 있는 상대에게 오직(re) 자신의 시각을 집중시킨다(spect)는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존경받고 싶어 한다. "칭찬은 고래도 좋아한다"는 책이 전 세계에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 만큼 인간은 자신이 관심받기를 원하는 존재이며, 자신이 관심을 받을 때 비로소 자신감을 회복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물론 어떤이들은 존경을 잘못해석해서 자긍함을 가지기도 한다. 이는 존경의 의미가 그런 잘못된 뜻을 소지한 것이 아니라, 존경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우상이 만들어 놓은 굴절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말해, 교회가 격려함, 사랑함, 그리고 존경함을 자기 정체성으로 가진다면 그 미래는 지금보다는 훨씬 밝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단지 죽은 개념, 즉 행동없는 격려, 사랑, 그리고 존경이라는 단지 사념뿐인 죽은 단어들만 가지고 있다면, 미래는 지금보다 더욱 어두워 질 것이다. 결국 교회의 미래는 행동하는 우리 자신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