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미남침례교 국내선교본부에서 한 권의 책이 편지와 함께 배달되어 왔습니다편지의 수신인이 그냥 “Dear Pastor” (경애하는 목사님에게)로 되어 있는 걸 보면 저에게만 보낸 것이 아니라 전국에 흩어져 사역하는 많은 목사님들에게 보낸듯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그것이 아니라 책의 제목이었습니다. [금식과 기도의 능력], 너무도 당연한 말인데 요즘처럼 세련되게 신앙생활하는 시대의 성도들에게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즉 ‘시대에 뒤떨어진’듯한 제목을 용감하게 정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 시대는 ‘파워’갈증 시대라고 할 수 있을만큼 툭하면 아무데나 ‘파워’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음료수에도 사용하고 건강식품이나 강연회 같은데도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느 때 보다 더 나약하고 그래서 더 많은 “파워”가 필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특히 신앙생활에서는 더더욱 실감이 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많은 세미나도 하고 프로그램도 운영해보지만 여전히 많은 성도들이 파워에 갈증을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파워갈증에 대한 해답은 이미 우리 곁에 있습니다. 바로 금식과 기도입니다. “기도와 금식외에는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마17:21, 어떤 사본에)는 말씀처럼 금식과 기도가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하여 ‘파워’신자가 되게합니다.
금식과 기도가 유익한 것은 먼저 우리를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부러뜨리신 것은 그를 낮추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환도뼈가 부러져 겸손함을 경험하기 원한다면 금식해보시기 바랍니다. 곡기를 입에서 끊는 것은 죽음을 각오했다는 의미이며 그런 절박한 자리에까지 떨어진 것은 내가 나를 낮춘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겸손함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외형적 제재를 가해서라도 나를 낮추어주는 금식은 많은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금식과 기도에는 또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 나를 내몰아 넣는 유익이 있습니다.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철저히 직시하면서 진정한 회개자가 되어 주님 앞에 서는 사람에게 금식과 기도는 생소한 것이 아닙니다. 바꾸어 말씀드리면 금식과 회개는 회개의 또 다른 제스처이고 회개의 구체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하나님 경외의 행위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연결됩니다. 그 시작지점과 과정 가운데 금식과 기도가 있습니다.
금식과 기도는 하나님께 온전히 항복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관제와 같이 내가 부음이 되고” (딤후4:6) 라던 사도바울의 고백은 ‘기름을 송두리째 쏟아붓듯이 나의 삶은 온전히 주님께 항복했다’는 의미입니다. 금식과 기도에 바로 그런 온전한 항복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금식과 기도에는 불확실한 미래를 주님과 함께 용감하게 대면한다는 각오가 들어있습니다. 언뜻보면 심각할 정도로 소극적인 태도인 것 같지만 금식과 기도는 태산을 옮길만한 용맹함이 있는 적극적인 태도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오늘 삶이 여러분을 나약하게 만들고 있다면 여러분은 ‘파워’가 필요합니다. 웰빙음식이나 비타민이나 파워 음료수보다 더 파워풀한 것을 소개합니다. 금식과 기도를 통해 성령님의 파워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강추합니다. 한번 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