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죽게 돼 있고 죽은 뒤에는 반드시 심판을 받게 돼 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인생 여정이다(히 9:27). 그리고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생명을 얻기 위해 부활할 것이며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심판을 받기 위해 부활할 것이다(요 5:29)". 죽은 사람들이 보좌 앞에 서게 될 때, 생명책(The Book)에 기록된 사람과 다른 책들(books)에 기록된 사람으로 분류될 것이다.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구원과 상금을 받을 것이요, 일반 책들에 기록된 사람들은 그 행한 대로 심판과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계 20:12-15).
그런데 최후 심판날 하나님께서 질문하실 것들과 질문하지 않으실 것들이 있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하나님께서 내가 어떤 종류의 차를 몰고 다녔는지는 묻지 않으실 것이다. 대신 그분은 내가 차 없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태워 주었는지를 물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몇㎡짜리 아파트에 살았는지는 묻지 않으실 것이다. 대신 그분은 남 보기에 좁은 공간일지라도 나의 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초대했는지를 물어 보실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옷장에 어떤 고급스런 옷들이 걸려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으실 것이다. 대신 그분은 내가 얼마나 자주 다른 사람들의 추위를 덮어주는 데 마음을 쏟았는지를 물어보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 연간소득이 얼마인지에 대해선 묻지 않으실 것이다. 대신 그 연봉을 받기 위해 나에게 허락해 주신 재능들을 얼마나 잘 발휘했는지를 물어 보실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직업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가 아니라 내게 주어진 일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물어 보실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얼마나 많은 친구를 두고 있는지를 묻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이 물어 보실 것은 "너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었나?"일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어떤 동네에서 어떤 이웃과 함께 살았는지보다, 내가 이웃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해 물어 보실 것이다. 비록 강남구 8학군이 아닐지라도 그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피부 색깔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신다. 나의 피부색이 아니라 나의 내면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물어보실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얼마나 많은 구제활동을 했고 어느 기관과 단체에 헌금을 했는지는 묻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묻지 않으셔도 우리의 발걸음을 천국의 저택으로 인도해주실 것이다. 비록 그것이 아주 작은 금액이었다 할지라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이런 저런 아름다운 길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했는지는 묻지 않으실 것이다. 대신 그분은 이미 우리의 생각을 깊이 정확하게 알고 계실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변론을 들어 보자.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께 나아갈까? 무엇을 가지고 높으신 하나님께 예배할까? 태워 드리는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주께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 마리 양을 기뻐하실까? 강줄기 만 개를 채울 만한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벗기 위해 내 맏아들이라도 바칠까? 내 죄를 씻기 위해 내 몸으로 낳은 자식이라도 바칠까? (여기까지가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검토하는 신앙 행위들이다. 이제 하나님의 반응과 응답을 들어 보자) 사람아! 무엇이 선하며,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의(義)를 행하고,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나와 함께 겸손히 행(行)하는 것이 아니냐?(미 6:6-8)"
하나님의 진심과 기대를 정확히 알고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이 신앙이다.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위선자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향료와 나무뿌리의 십일조까지도 드리면서, 정의(正義), 자비(慈悲), 믿음(信用)과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부분은 무시한다. 십일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눈이 먼 너희여, 너희는 모기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켜버린다!(마 23:23-24)"고 충고하였다. 더 중요한 본질(정신적인 것, 내면적 가치)은 소홀히 여기면서 덜 중요한 지엽(물질적인 것, 외형적 의식)에만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셨다.
비유컨대 "見肢忘月"(달 보라고 손가락질 했더니 달은 안보고 손가락만 보고 있다)을 꾸짖었다. 수레에 타고 있는 임금님은 무시한 채 수레를 끌고 오는 말(馬)에게만 존경을 표한다면 그 임금님이 기뻐하고 칭찬하겠는가? 하나님께서 질문하실 것에 대답을 준비하자. 하나님의 관심 밖에 있는 곁가지 문제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자. 사람이 안식일보다 중요하고 교인 수나 교회당 크기보다 그 속에 있는 인간들의 중심이 더 중요한 것이다. 무정란과 회칠한 무덤은 아무리 화려해도 주님의 관심사가 아니다.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