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준관 목사가 한국교회를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기독교는 그 본질에 있어서 도덕·윤리적 종교가 아닙니다. 신앙인들이 이 함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신앙이 도덕으로 둔갑해 윤리와 도덕이 마치 신앙인 것처럼 위장해 온 근본적인 오류를 넘어서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다.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영성 회복, 도덕성 회복, 성스러움의 회복" 등을 언급하는 것 자체는 소중하고 절실한 접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이 잘못하면 지난날 우리의 신앙의 선진들이 범해 온 "성직 패러다임"의 반복 내지 "도덕주의 패러다임"에 빠질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 "사회봉사나 구제 사역도 그렇습니다. 이것도 교회의 소중한 사역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신앙과 교회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는 없듯이. 봉사는 살아 있는 교회 공동체의 존재 양식이며 사역일 때 의미가 있기 때문 입니다. 지금의 로마 가톨릭의 교황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않는 한, 자선단체나 NGO는 될 수 있어도 교회는 아니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이 한마디가 너무도 많은 카톨릭 교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합니다. 이렇듯 신앙의 주체가 도덕주의 패러다임과 사회봉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해결해야 할 신앙의 과제는 신앙이 "영적 에너지와 영적 문맹"이 교묘하게 얽혀 있어, 쉽게 드러나지 않는 영적 문맹이 영적 에너지를 타고 거룩으로 둔갑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복신앙과 번영신학, 교회 정치, 신학 없는 평신도 운동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 입니다. 또한 성도는 거룩의 이름으로 마지막 남은 영적 에너지마저 영적 문맹으로 매몰시키는 거룩한 범죄를 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순수하고 거룩한 "영적 에너지"와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영적 문맹" 사이를 어떻게 매개체로 하여 "영적 파워"로 승화시킬 수 있는가? 입니다.
그것은 "목회는 목회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목회란 "교회 공동체에 위임된 직을 수행하고, 만인제사장인 성도들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사역을 하게 하는 것이 목회" 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모르기에 "오늘날 목회자의 탈진과 좌절, 이탈의 악순환이 반목되는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영적 문맹으로 전락한 성도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되돌려 놓는 종말론적 결단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십자가의 비밀을 기억하고,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사신 하나님의 생명을 호흡하는 생명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